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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인 배려가 되지 않기 위하여
박정인(법학박사)  |  view : 398

1. <우리 모두는 약자이지만 그것이 일반화되면 곤란하다>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특수 학급을 담당하는 유치원 교사가 6살 아이들의 급식에 정체불명의 액체를 넣어 경찰이 수사를 벌여보니 모기 기피제에 들어가는 성분인 ‘디에틸톨루아미드’가 발견되었다. 유치원생에게 선생님은 거역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유치원생들은 급식을 대부분 남기지 않고 먹는다.

경기도 성남에서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는 12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화가 나고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 괴로운 날이다”라고 올리면서 비싼 차 벤츠 한 대가 성당에 와서 할머니, 아주머니가 내려서 태연히 노숙인들 사이에 끼어 들어 도시락을 받아가자 이를 저지했지만 결국 받아갔다고 했다. 그들은 벤츠를 타는 자신을 노숙인과 동일하게 도시락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약자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겸임교수이고 작은 연구소를 운영한다. 나는 국가가 주는 연구용역을 해서 이를 납품하여 후배들과 먹고 산다. 연구용역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제안서를 써서 선정되는 것도 아니지만 관련분야 지식인으로서 어떻게든 정책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작은 보고서를 써서 관련 위원회 의원실에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시민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지식공유하는 교육을 하기도 한다.

연구용역을 하거나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에는 내 전문분야의 무료상담을 해준다. 무료상담으로 굳이 나를 찾아올 필요 없음에도 서비스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들 자신들이 약자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업계에서 1, 2위를 다투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돌봄이 필요한 법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행복해 하게 해주는 것이고 나눔은 돌려받을 생각이 없는 행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을 하는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나눔 위에 서있음을 깨닫는다.



2. <다른 직업도 많았을 텐데 이 직업을 선택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나역시 돌봄을 받는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돌보지 못한 시간의 공백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해준 활동지원사가 메꾸어준다. 활동지원사를 이용하려면 일정한 자부담비를 내야 하는데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때부터 나는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활동지원사의 돌봄을 받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아침 시간은 당연히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학교는 운영하지 않는다.

학교 내 돌봄이라는 서비스가 있기는 하지만 학교와 함께 폐쇄되기가 일쑤이고 도시락과 간식을 보내야 하고 4시30분에서 5시면 모두 찾아가야 하고 일단 아들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실제 학교를 운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협의를 못해서 활동지원사를 쓸 수 있는 100시간 정도 되는 시간을 오전에 사용할 수 없다. 결국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학교가 안 함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전과 같이 오후 2시30분, 학교가 끝났다고 볼 수 있는 시간부터이다.

그래서 내가 아침에 저작권보호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사건심의를 가거나 하는 경우에는 활동지원사가 8시부터 와서 아들을 돌봐주지만 오전 노동은 부정노동으로 노동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내가 약간의 비용이라도 주려고 하면 규정위반이라고 활동지원사는 냉정히 거절한다. 최저임금시급에 활동지원중개기관에게 일부 중개료도 내야하는 노동을 부불노동으로 강요하는 셈이다.

나는 주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인지 수년동안 활동지원사를 하는 이 분의 이러한 도움을 받아왔다. 이제는 중학교에 가는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을 모두 담당해 준 분이라 그분의 가족과도 매우 절친할 뿐 아니라 늘 마음 불편해 하며 사회 생활하는 나를 안타깝게 여겨주고 내가 일을 그만둘까봐 늘 걱정해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애인가족은 나처럼 운이 좋지 않다. 그래서 장애인을 돌보는 것을 전담하는 사람은 일을 할 수 없다. 특히 내 아들과 같이 중증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사를 구하기도 어렵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사를 2명은 붙여줘야 마땅한 상황이 너무나도 많지만 경증장애인과 동일하게 한명이 일을 담당하기 때문에 활동지원사는 같은 돈을 받고 일하면서 경증장애인을 선택하여 일하고 싶어한다.

게다가 활동지원사의 처우는 정말 너무 나쁘다. 장애인의 모든 짜증과 고충을 그대로 받아주어야 하는 대상임에도 우리 사회는 그들의 상처를 존중해주는 심리지원서비스 하나 해주는 것도 인색하다.

나는 운전면허증은 있지만 장롱면허이다. 환경에 대한 공부를 한 이후로 차마 나까지 존재의 부담을 지구에게 주면서 운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코로나19가 온 뒤 가지 않는 학교를 대신해서 아들을 돌보는 활동지원사에게 돈도 안주고 힘들게 일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오전에는 모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래서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아들과 치료를 다닌다.

장애인콜택시를 병원에 세웠고 장애인이 나오는 동안 잠시 대기하는 것인데도 병원은 장애인콜택시 정차를 이해해주지고 않고 장애인을 항상 태우고 있음에도 장애인 주차 하는 것조차 눈총을 받는다. 장애인콜택시 운전원은 화장실도 편히 갈 수 없기 때문에 물도 시원하게 마시지 못하고 상동행동을 하는 장애인들을 함께 탄 동승자가 막아주지 못하면 모든 돌발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며 운전해야 한다.

장애인콜택시 운전원을 배려해주는 톨게이트 지원비도 없고, 주차비를 지원해주지도 않는다. 그들이 갈만한 식당과 화장실 안내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업에서 겪는 고충을 무시하는 것은 우리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보는가의 관점과 비례한다.

아파트에서 내 아들을 알지도 못하면서 “이이..으으” 이런 발달장애인이 내는 소리를 내면 “임마! 인사 똑바로 해야지” 하고 엄마인 내가 있는데도 꿀밤을 먹이는 입주민들이 있다. 보통 13세 소년에게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

또한 내 아들이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는데 나를 재소자 수감번호처럼 “1304호 아들 잘 붙잡아”라고 말하며 “장애인 데리고 코로나인데 어딜 돌아다녀”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나는 장애인아들을 두었다는 이유로 내 아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대우를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받는다.

우아한 분들이 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아들을 데리고 갔을 때 역시 아들이 “이이...으으...”이런 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모든 직원이 감상하는 내내 따라다녀서 뭘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쫓기듯이 나왔다. 정말 일반인들의 시선이 원망스러웠다. 아들에게 작품하나 편히 설명해줄수가 없었다. 어딜 가나 아들과 다닐때는 반사적으로 굽신거리게 되고 어떤 장소에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장애인과 장애인가족은 쉴 곳이 없다.

방문으로 장애인정보화교육을 하는 선생님께서 일반인보다도 내 아들이 집중력이 더 좋다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런 칭찬은 어색하다.

내가 보기에도 장애인이라는 약점은 우리가 만들어 학습하고 있는 한심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아들은 집안에서는 누구보다 청소도 잘하고 단 한번도 엄마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은 선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아들이다. 심지어 언어가 원활하지 못해 단 한번도 누구를 해하는 말을 한 적도 거짓말을 한 적도 없는 천사와 같은 청소년이다. 대다수의 무관심하면서 무시하는 대중들, 침묵하지 않고 괴롭히는 악마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아들의 활동지원사 같은 천사같은 사람도 주변에 있다고 믿는다.

그분이 나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부모들 쉬라고 주말이면 성인발달장애인 4명을 자기 차에 태우고 서울랜드를 가고 소풍을 기획하는 그런 친구다. 성인발달장애인 4명 내내 1주일동안 오직 내 아들의 활동지원사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성인발달장애인 친구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성인발달장애인 친구들 먹고 싶은 것 먹이고 사고 싶은거 사주느라 자기는 거의 벌이도 없는데 그래도 자기 덕분에 그분들 연로한 부모님들이 목욕도 가고 시장도 편히 보고 그럴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좋다고 말한다.


3. <정말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특수교사는 장애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다. 물론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이런 선생님은 찾아볼수도 기대할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12월 15일,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은 3단계에 준하는 조치에도 특수교육대상학생에게 대면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한 조치를 철회하라. 둘째, 특수교육대상학생의 보호자가 과중한 돌봄에 놓이지 않도록 활동보조등 관련 제도 개선을 통해 적절한 행정 재정적 지원을 하라. 셋째 특수교육대상학생들의 비대면 원격수업을 지원하기 위한 학습꾸러기 구입 예산과 원격수업자료 및 EBS 프로그램을 제공하라. 넷째, 장애영역별, 연령별 세부적인 안전지침을 현장에 전달하라고 국가에게 요구했다.

특수교사는 한국에서 지위가 일반교사보다 낮다. 일반학교 특수학급 교사의 처우를 목도하면 통합을 이룰 준비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외국은 일반학교 교사를 수년간 해서 문제가 없어야 모범택시처럼 특수학급을 운영할 자격을 준다.) 내 아들 역시 병설학교 유치원에서 통합을 시도했으나 특수교사와 일반교사의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고 항상 일찍 데려가 주기만을 강요받았으며 소풍 한 번 데려가 주지 않았다. 통합은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땅의 교사들의 태도를 직시하고였다.

하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 중 가장 양질의 일자리가 특수교사이다. 장애인복지관의 치료사와 사회복지사도, 활동지원사나 장애인콜택시운전원도 특수교사만큼의 처우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러나 코로나19가 1년이 다 된 지금, 올해 학교가 한일은 내가보기엔 아무것도 없다.

장애인가정들이 학교가 정지하여 일도 못하러 가고 벼랑끝 위기에 몰려있는 것을 코앞에서 지켜보았고, 원격수업은 장애인 학생에게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특수교사노동조합이 대면수업을 하라고 하지 말라고 요청하고 다 개별적으로 재가공하여야 할 자신들이 만들어야 할 수업자료 요청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교육이라는 ‘보수성’ 앞에서 아동과 청소년을 이대로 맡겨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

특수학교 한 반의 학생은 6명이다. 선생님이 마음만 가진다면 일주일에 한번씩은 1~2명의 학생들을 등교할 수 있도록 하여 학습을 지도할 수도 있고 부모 돌봄의 가중함을 줄이고 가정의 학부모에게 요청하는 가정 사진으로 보고서를 쓸 필요가 없다. 교권 행사로 인하여 복지관에도 존재하는 CCTV를 특수학교에는 달지도 못하고 있다. 인강학교를 비롯해 교사와 사회복무요원의 장애학생들에 대한 폭력을 아무리 떠들어도 형량은 올라가지도 CCTV에 대한 학교의 허락은 한없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이다.

일반학생도 다를 것이 없다. 나는 우리 연대 교육복지센터에서 멘토링 교육봉사를 하고 있다. 덕분에 일반학생들의 코로나19가 닥쳐온 삶을 멘토링학생을 통하여 엿보았는데 일주일에 1번 가는 학교조차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없었다.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단톡방을 만들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을 뿐 원격교육이 없는 나머지 기간에 부모님이 일하러 가면 학생들은 그저 굶었다. 원격수업의 효율성에 대해서 의문이 끝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누구하나 그런 것을 신경 쓰려 하지 않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대안도 제시하라고 할까봐인지 모두 원격교육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부모대신 지켜본 원격수업에서 선생님은 원격수업에서 요즘 학생들에게 “누가 말해볼까?”라고 하지만 아무도 말하기 싫어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로그인되어 있는 상태에서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지식을 가르치는 부분도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누워서 듣는 학생, 엎드려 있는 학생 공부를 위해서인지 학교생활을 배우기 위해서인지 그 어떤 교육의 목표도 상실되었다. 게다가 각종 컴퓨터사용의 부족함은 부모가 없는 친구들과 부모가 계속 지켜보고 돕고 있는 친구 사이에서 뼈저리게 차이가 났다. 숙제는 너무나 많았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불만을 말할 수 없는 건 내일도 그 학교를 보내야 하고, 선생님을 기피하는 방법이나 학생이 이사를 하는 번거로움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 교육운 어딜가나 이렇게 똑같다는 것이다. 모든 부모가 원격수업이 효율적이지 않고 부모를 잡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학교에는 어떤 저항도 없었고 공교육은 아무것도 개선되지 못했다.

심지어 학생들이 원활하게 원격수업 장비를 갖추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고 아이들은 원격수업의 피로함을 없애려 게임을 하기 위해 PC방으로 몰려들었다.

이 시대 선생님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고 학교는 선생님의 급여를 위한 곳인가? 아니면 학생들의 유청소년기의 경험과 자립을 위한 곳인가?


4. <약자를 위해 대안을 제시할 전문가는 어디에 있는가?>

장애라고 하기만 하면 인권전문가부터 시작해서 온갖 전문가들의 강연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전문가인지 알 수도 없다.

국제포럼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나와서 장애인 확진자를 돌보는 활동 사진을 보여주며 K방역이라며 칭찬받았는데, 실제 서비스 작성을 위해서는 홈페이지 신청서를 작성한 후 팩스로 보내라고 한다. 게다가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입증해야 하는 장애인 그 누구도 이것을 혼자서 다 해낼수가 없다. 확진 후 병원이 꽉 차서 5평 남짓한 방에 홀로 남겨진 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은 커녕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음에도 '확진자에겐 활동지원사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은 채 목이 말라도 물 한 잔 마실 수 없고 화장실을 가고 싶은 것도 안간힘을 써 버티고 계속 굶었다. 다만 병상 자리가 나 병원에 가면 아예 활동지원사 도움없이 기저귀를 차고 누워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6월,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코로나19 지원사례'로 자가격리 중인 장애인을 돌보는 경우 원래의 급여량과 무관하게 24시간 활동지원 급여를 제공하고 돌봄 제공자의 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해 가족에 의한 돌봄도 급여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러나 2주 내내 24시간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은 한명의 활동지원사에게 이를 강제하면 근로권 침해를 넘어서 생존권 침해이고 최저시급에 그런 지원을 할 수 있는 활동지원사를 찾는 건 실제는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솔루션 위원으로 회의가 열렸을 때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발달장애인아들을 맡겠다는 활동지원사가 없어 장애인가족이 돌아가면서 2인 1팀으로 돌보아야만 하고 장애인가족이 장애인을 학대했을 때는 해당 장애인을 빼올 수 없는 현실, 부의 폭력으로 어머니와 성인발달장애인은 함께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없는 획일화된 규정 등 그 어디에도 장애인을 인간으로 이해하고 전문적으로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시스템과 복지전문가는 없었다.

모두가 전문가로 나서지만 전문가는 없는 세상, 그동안 모두 오만해서 전문가를 무시해 온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결국 지난 한주동안 약자를 배려하며 묵상한번 한 적 없으면서 자신은 약자를 잘 이해하는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려움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나올 수가 없다. 누군가가 구조해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런 때를 위해 지식이 필요하고 전문가는 위기에 빛나는 자이며, 사회단체는 행동을 결집하고 시스템 구축을 촉구하는 곳이 아닌가!

우리가 약자들에게 그들이 우리의 세계로 오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세계로 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예전에 여명학교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쳐본적이 있다. 북한에서 바로 온 친구들과 제3국을 통해 온 친구들의 국어 실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단어를 이해할 생각조차 없었다.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에게 한국어만을 강요하고 우리가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먼저 배울 생각은 없는 것. 그 자체가 우리는 배려가 없다. 이땅에 살고 싶으면 다수에 속하는 문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역사와 정서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가 약자들(소수자분들)의 문화를 공부하기 싫고 이해하고 배우기 어려운만큼 그들은 더 배우기가 어려운데 적응을 무기로 폭력을 휘두른 것은 아닌지 우리는 반성해 보아야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우리 미래를 위한 적립이며, 우리는 약자로 시작해 약자로 떠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가의 양성과 권위의 존중은 국가가 최우선과제로 두고 하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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