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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향한 우리의 변명은 정말 부끄럽지 않은 것일까
박정인(법학박사)  |  view : 43

조은성 감독님이 주신 김하연님의 <운좋게 살아남았다>라는 책을 새벽에 천천히 읽어보면서 인간의 종이 특별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인간으로 인하여 죽은 고양이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를 만나면 불안하고 더 나아가 두려워하고 혐오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수에 속한다는 오만으로 편견을 만들고 그것으로 다수가 단합하기도 한다.


그러면 마음의 안정이 오는지 때로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대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오전에도 관악구에서 새끼고양이 여러마리의 머리, 다리를 절단해 죽인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착하고도 연약하고 아름다운 새끼 고양이는 왜 죽어야 했을까. 새끼 고양이 가해자는 평생 고통의 굴레에서 보복받기를 바란다.


고양이는 가장 많은 오해를 받는 동물이다. 성서에 고양이는 나오지 않지만 페르시아의 설화에 보면 루스탐은 도둑떼로부터 마술사를 구해주는데 마술사는 그 대가로 “모닥불의 따뜻함과 나른함,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나는 냄새, 머리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의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를 드리겠다고 하며 숨을 불어넣자 고양이의 털, 혀, 눈이 되어 예쁜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안겨주었다고 한다.(진중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중에서) 


이 아름답고 연약한 동물은 다수에 속하지 않는 약자의 대표성이다. 영화는 다수에 속하지 않는 것, 다수의 공감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는 현실을 목놓아 이야기한다.


다수는 권력을 의미하고 권력을 가진 자의 상대방에 서 있는 자들은 그림자처럼 다수의 눈에 띄지 않으려 숨소리조차 죽이며 살아간다. 그러한 자본주의가 극명하게 살아있는 대한민국, 문명이 열매라면 문화는 풍토이다. 


그리하여 다수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이 풍토 위에 소수에 해당하는 길고양이들은 다수의 권리를 위협하는 것도 없는데 그늘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연명하며 살아간다. 


이미 약자의 대표인 노인의 국가 일본이 길고양이와 공존하는 모습을 감독은 담담하게 보여주며, 우리 대한민국은 약자와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 모색할 것인가? 과연 방법 모색을 실패하면 약자는 다수의 이해를 위해 어깨도 펴지 못하고 햇살에 나와서는 살수 없는가? 우리 대한민국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다수의 양보를 이끌어 낼 의지가 있는가? 라고 반문한다.


조은성 감독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구구는 고양이다>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고양이의 보은> 등 고양이 픽션영화를 모두 섭렵한 나에게 고양이는 너무나 매력적인 동물이라는 꿈속에서 깨어나 한국 고양이의 현실은 얼마나 비참한지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현, 두도시 이야기>때처럼 조감독은 서정적이고 따뜻한 눈길을 멈추지 않고 세련되게 인간 누구나 가지는 동병상련의 눈물샘과 정책적 제언을 균형적으로 자극해가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형평성 있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모든 사물은 어떠한 원천에서 생겨나고 그들이 소멸되어야 할 때 그 생겨났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시간의 질서에 따라 문명과 풍토속에서 서로를 보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요없는 것은 길가로 치워지고 결국 쓰레기가 되어 어딘가서 함께 태워져야만 하고 늘 깨끗한 곳에서 깨끗하게 살아가야만 한다는 도시의 강박을 어쩐지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잣대로 끊임없이 자신을 질책하고 생명의 경외심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인식하면 사회적 타살인 자살을 택하는 확률이 높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동물을 보면 먹어야 한다는 생각, 동물은 인간을 위해 죽여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는 나라, 그런 인식 속에 쌓아올린 인간은 과연 존엄할까? 


함께 공존하는 인간 속에서도 분별없는 분류와 계급으로 끊임없이 분열을 촉진하고 화합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권과 생존을 지키려는 사람들 속에서 도시는 사막과 같은 삭막함과 야만성이 더해간다. 


한때는 오히려 동물을 신격화하며 생명에 관한 경외심으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스마트폰은 없어도 약한 존재에게 먼저 생명의 기회를 주고 정글의 법칙을 넘어서는 사랑의 법칙을 제안하는 세상이 있었다. 인간이 약하게 태어나 약하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정글의 법칙이 인간의 법칙이 아니라 사랑의 법칙이 인간의 법칙임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동물보호법상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동물을 사육, 관리, 보호함에 있어서는 다음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할 것


2.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


3.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고 불편함을 겪지 아니하도록 할 것


4. 동물이 고통ㆍ상해 및 질병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할 것


5. 동물이 공포와 스트레스를 받지 아니하도록 할 것


그러나 농림축산식품부 방역관리과가 모든 척추동물에 관하여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수립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보다 더 전문인력을 투입하고 관계자들의 이해를 수렴할 수 있도록 반려동물과 기타 동물로 분류가 필요하다. 


2015년 1월 30일자로 발표된 2015~2019 국가의 동물복지종합계획을 살펴보면 길고양이 적정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사업 표준지침을 마련하고 사업비 지원, 민관 협조를 통한 관리 '홍보도 강화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현재 중성화사업 표준지침도 마련되지 않았으며 관련 관리, 홍보도 미흡한 실정이다. 게다가 반려동물의 사설보호소 임의 보호소 증가를 피부로 느낄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애니멀 호더(동물 수를 늘리는 데에만 집착하는 사람으로, 동물학대의 일종)의 제재도 미약하다. 


현재 동물학대에 대한 형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2017년 9월1일부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개정) 


그러나 진정한 동물학대를 뿌리뽑기 위하여 동물보호법 제41조의2를 개정하여 학대가해자의 포상금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고 동물보호명예감시원제도를 자격기준을 완화하여 명예감시제가 좀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비록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상 연구대상은 인간과 인체유래물 등이지만 동물 역시 생명윤리의 연장선상에서 함께 다루어야 할 부분임은 명확하다. 


조은성 감독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인간 누구나가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는 불안의 시대에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고양이에 이입하여 지금 사회인식과 제도가 미래를 위한 어떤 적립을 준비해야할지 젊음과 활력이 있을 때 우리가 주력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해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는 자연의 질서를 넘어서서 인류가 공동의 목장에서 풀을 뜯는 양과 같이 공동의 법 아래 하나의 질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유념하여야 할 모든 철학이 들어있다.


영상물 속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남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내가 먼저” 정신만이 이 모든 공존의 해법임을 부디 영화가 끝날 때 곱씹어 보길 바란다. 


조은성 감독의  <고양이집사>는 12월 3일 재개봉한다. 많은 사람들이 약자와 함께 공생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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