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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진국이다.
송기호(변호사)  |  view : 531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난주 목요일 하루 18만7000명을 넘었다. 그 어떤 나라도 역병이 전 지구적으로 창궐한 이후 단 하루 만의 국민 확진자 기록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 이제 미국에서 사망하는 사람의 4분의 1이 코로나19 환자이다. 흑인의 피해는 백인의 두 배에 이른다.


미국은 실패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70개국이 넘는 외국에 약 800개의 군사기지를 만들어 군대를 파병하여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 민주주의에서 미국의 실패는 더욱 뼈아프다. 공정한 선거와 승복조차 미국의 현직 대통령은 헌신짝처럼 버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준 유권자가 7300만명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투표한 미국인의 47.2%이다. 트럼프가 임기 내내 인종차별적인 언행으로 일관하고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모습은 태평양 건너편에서조차 또렷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무려 7000만표를 훌쩍 넘기다니!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은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듯이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가 백악관을 떠나더라도 미국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인종 차별과 군사주의에 터잡은 트럼프주의는 살아있다.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은 흑인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면 거의 잡아먹힐 뻔했다. 미국은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나라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세계적 문제가 되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는 한 코로나19 역병은 끝나지 않는다.


이달 10일, 불과 보름 전 중국 인권변호사 장바오청에게 3년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그의 죄명은 테러주의와 극단주의를 선양했다는 것. 나는 중국의 2001년을 기억한다. 그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중국은 이를 줄여 ‘입세(入世)’라고 불렀는데, 약칭이 안성맞춤이었다. 중국이 세계에 복귀했다. 입세 후 10년 동안 중국의 대외 무역은 6배가 늘었다. 중국은 세계 1위의 수출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경제발전을 반영하여 인권과 인간 존엄성 보장의 법치국가로 나아가리라 기대했다. 입세 후 15년이 지난 2015년에는 중국 변호사 숫자가 30만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해 7월9일, 중국 인권변호사 대체포 사건이 터졌다. 중국 전역에서 몇 달간 인권변호사와 인권운동가 300여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중국이 경제 대성장을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담을 보편적 법치주의를 이루고자 하였다. 소외당하는 인민을 대변하고자 하였다. 중국 지도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이 사건을 중국 법치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킨 뼈아픈 좌절로 본다. 중국의 인권변호사들이 억압당하지 않고 성장했다면 작년 겨울 우한에서의 코로나19 정보는 투명하게 더 일찍 공개되었을 것이다. 중국과 세계 사이의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세계는 ‘중국몽’에 공감하였을 것이다.


한국은 국민 10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가 미국의 1.3%밖에 안 된다. 대낮에 광화문집회에서 대통령을 향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해도 잡아가지 않는 나라이다. 시민이 아프면 병원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는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앞선 나라, 선진국이다. 한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미국과 중국에 큰 영향을 준다. 한국은 미·중이 본받을 모델 국가, 미·중을 잇는 접착 국가로 성장했다. 한국은 선진국인 자신의 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으로서의 경제력과 민주주의를 손에 쥐고 있다.


한국이 자주적 전략 단위임을 주변 나라가 알도록 행동할 때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군사주의 모순을 해결하도록 미국의 군사주의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요 국군 전투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조기에 환수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한국 법치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에서의 비군사적 분야 일체의 행정권을 행사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의 안전은 핵잠수함 같은 군사 무기로 담보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요구하는 ‘쿼드’와 같은 중국 포위 안보 체제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한국이 자주적 선진국이어야 중국과 미국을 이어붙일 수 있다.


중국이 경제 발전에 상응하는 법치와 인권 보장을 성취하는 데에 한국 모델이 중요하다. 중국 인민의 가장 가까이에서 평등한 법치 공간을 보여줄 나라이다. 나는 상상한다. 선진국 한국에 아시아인권재판소를 창설하는 날을. 현재 유럽, 미주, 아프리카에 이미 인권재판소가 있다. 또한 소망한다. 선진국 한국이 유엔 핵무기 금지 협정과 아시아 비핵지대를 주도하는 순간을. 한국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경향신문 2020. 11. 25.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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