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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남북이 동시 폐지하자
송기호 변호사  |  view : 558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없다는 규범은 이 땅에 1919년 처음으로 선포됐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처음 정한 1919년 임시헌장에서, 이 땅의 인민의 대표자들은 사형제를 폐지했다. 대한민국 공동체는 그 역사적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국가기구에 의한 살인을 불법으로 선언하면서 출범한 선진 문명이었다. 독일이 1949년에, 프랑스가 2007년에 헌법에서 사형제를 폐지한 때보다 앞섰다. 그러나 대한민국 인민들의 의지는 일제 식민주의자, 미·소 점령군, 그리고 한국전쟁의 피비린내 속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서해에서 북한군에 의해 총격으로 살해당한 한국 공무원의 죽음을 애도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드린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임을 알아보고도 총으로 쏘아 죽인 행위는 국제법과 문명에 반한 범죄이다.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코로나19 역병이 살인의 면죄부는 아니다. 경찰과 검찰은 살인 책임자를 특정할 수 있을 때 언제든지 대한민국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수사 절차를 개시하여야 한다. 살인죄의 공소시효 진행을 중단시키는 조치를 해야 한다.


2013년에 임진강을 헤엄쳐 북한으로 건너가려는 비무장 한국민을 한국군이 총을 쏘아 살해하였다. 당시 한국군은 남쪽으로 돌아오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북쪽을 향하여 강에 뛰어들어 부유물을 잡고 헤엄치던 사람을 사격해 죽였다. 숨진 한국민이 강을 헤엄쳐 북한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 분명했던 이 사건도 살인죄 공소시효가 지나버리기 전에 철저하게 재수사해야 한다. 단지 도주하려고 했다는 것만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 군대라고 하여 생명권의 보편적 문명 규범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특권은 없다. 문명국의 군대가 교전규칙을 만드는 것도, 심지어 전투 상황에서도 생명권 존중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전선을 지키는 초병들에게도 적용한다.


한반도를 살아가는 생명을, 그 목숨의 값을 아프게 성찰한다. 일제 식민주의자들, 미·소 점령군,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에 많은 무수한 생명이 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비무장 상태에서 국가기구에 의해 불법적으로 학살되었다. 대한민국 인민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문명적이었던 헌법의 역사와 함께 가장 잔학했다고 할 학살이 병존했다.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에 이르는 한국의 지도자들은 분단의 질곡에서 해방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그럼에도 왜 분단은 이토록 충격적으로 강고할까? 오히려 북한의 핵무기와 서해 5도 요새화에서 알 수 있듯이, 남과 북의 무력 충돌 위험은 더 포악해지는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분단 질서를 받아들이게 하는 힘은 그저 외세에서 나오지 않는다. 식민지 시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 남과 북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무수한 죽임의 공포에서 우리의 의식이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땅이 독일 분단과 다른 점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 사람들이 민족 내부의 대립 속에서 학살됐다는 비극이다. 남과 북의 정치체제는 이 죽음의 과정에서 형성됐다. 남북 분단이 강고하게 유지되는 것은 민족 내부의 너무도 몸서리치는 집단적 학살 기억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학살과 처형의 공포가 지속되는 한 남북 분단을 해소할 수 없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그 누구도 더 이상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안심이 필요하다. 같이 있어도 죽지 않는다는 안심이다. 남과 북이 동시에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이 안심이다. 한국은 형법 41조에 형벌의 종류로 사형을 인정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사형제는 인권에 반한다. 북한도 북한 형법 27조의 사형 형벌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 북한 형법 63조 조국 반역죄가 ‘배반’ ‘변절’과 같은 두루뭉술한 행위에 대해서도 사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한 것은 문명에 반한다. 북한이 인권 보장을 위해 도입한 형법 6조의 죄형 법정주의, 즉 법에서 명확하게 정해 놓지 않은 죄로는 처벌하지 못하는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사형제 폐지는 북한의 경제개발구 발전 국가 전략에도 유익하다. 함부로 사람을 죽이는 곳이라면 누가 마음놓고 장사를 하고 투자를 할 것인가?


어느 곳에서나 사형제 지지자들이 더 많다.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세다. 그러나 남북 공동 사형제 폐지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똬리를 튼 분단을 해소할 수 있다. 사형제를 폐지했던 1919년의 대한민국 인민들에게 2020년의 남과 북이 답할 때이다. 거듭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향신문 2020. 9. 30. 기고)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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