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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심우기 (시인, 전 경원대강사)  |  view : 585

혐오의 담론이 횡행한다. 이는 진영·세대·지역·종교·인종 등 전 분야에 걸쳐 확산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날카롭게 되고 신경질적으로 퍼지고 있다. 이는 사회의 분열과 반목으로 이끌어 서로 살기 갑갑하고 빡빡한 갈등 사회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주된 역할의 책임이 정치다.


혐오의 정치는 이제 공공연하게 되어 상대를 비난 저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기 편까지도 칼끝을 들이댄다, 자기가 추종하는 인물을 비판하면 온갖 독설과 자주를 퍼붓는다. 맞고 안 맞고의 문제도 아니고 무조건 싫은 것이다. 합리성과 이성적 판단을 거부한다. 이를 옹호하거나 감싸려 들면 똑같은 몰매를 맞는다.


합리적 비판이나 사고를 무시하거나 어느 한 편에 종속시켜 자기들 동질성의 강화만을 요구한다. 이는 우리 정치판에 극단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대표적인 경우가 소위 빠 문화로 이런 폐해를 확대 강화한 측면이 있다.


이는 사람, 인물 중심의 정치와 사고를 만들어 어떤 특정의 개인을 영웅시하거나 우상시한다. 팬덤시하고 이미지화하여 온갖 화려한 레토릭(수사)만 득시글댄다. 자기가 뱉은 말이나 공약을 지키고 지켜내려는 노력은 없다. 권력만 잡으면 된다. 이는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나 경제 문화계 등 온갖 곳곳에 널려 있다. 이는 정당한 비판이나 건의가 무시되고 합리적 운영과 발전을 저해한다.


전제주의 사회나 체제는 이것이 더욱 심한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으며 북한의 체제도 백두혈통이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세습이 3대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서구 민주주의 학습하의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 우리는 누군가의 그늘에 기대어 숨을 쉬려고 하는가.


정치나 모든 영역의 당당한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를 대신하여 간접 민주주의나 권력에 대리만족하려 하는가.



혐오는 개인 각자의 주체성을 축소하고 집단이나 단체의 힘으로 뭉개거나 봉쇄시키는 힘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이 혐오 논리와 혐오 담론이다. 차이를 찾아내고 차별을 강화한다. 그리고 동일성 또는 동질성의 강화를 통해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고 적으로 간주한다. 과거 진영의 논리로서 자기 편엔 관대하거나 다른 논리를 들이댄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합의와 타협이 잘 안 된다. 겨우 이해관계에 따라 나눠 먹기로 끝나는 경우를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다.


최근의 성평등에 관한 논쟁도 그렇다. 여기에 심하게 작동하는 것은 혐오의 담론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특정 성의 우위나 주장을 통한 병적인 집착은 서로 반목하고 심지어는 적으로 규정하고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사고까지 하게 된다. 상대를 인정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존중, 인간에 대한 예의, 자연에 대한 경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물질적 경제적 사회 이슈나 정치 현안 문제에 대해 종교가 이를 중간 소통자로서 해야 할 역할로 문제 해결 소통의 창구나 중재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종교인 그들은 일부이지만 혐오의 정치와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다. 일부 보수 극우 기독교가 큰 패악을 저지르고 있다. 공공의 장소나 광장에서 공공연히 독설과 욕지거리, 살인과 증오를 선동 선전하고 거짓 뉴스를 확대하여 불신을 조장하고 화합과 평화가 아니라 분열과 반목을 증대시켜왔다. 혐오로 말도 안 되는 거짓 선동을 공공의 장소나 인터넷매체에서 시시덕대며 조롱하고 비난하고 있다. 이것을 신앙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분열과 증오를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불의한 행동 외에도 기성 종교가 타락, 부정과 부패로 인해 대중들에게 손가락질과 조롱거리로 전락했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종교 세력을 가지고 혐오와 증오를 증폭시켜 자신들의 개인적 영달과 목적을 이루려 한다. 자상과 회개 반성이 없다 이것이 문제다.


혐오의 논리와 공격은 보수 진영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상대를 인신공격하거나 비아냥대고 이름과 외모를 가지고 조롱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것은 위트도 비유도 아닌 토설일 뿐이다. 사회 대개혁은 자본의 주체(자본가, 재벌)를 단지 적으로 돌려서는 진행될 수 없다. 이는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무수한 사람들의 피와 증오를 불렀다. 이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치유의 과정은 힘들고 그 트라우마는 후대에까지 이어져 와서 그릇된 역사 인식과 왜곡의 사고를 만들어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음을 안다.


타자의 인정은 나의 인정이고 다름과 차이의 존중은 서로의 존중이며 단 하나의 깃발이나 단일 조직 권위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것은 정상적이다. 이러한 질서가 있다면 싸우고 무너뜨려야 한다. 관습적이고 고루한 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생성, 생명의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외양의 변화가 아니라 의식과 사고의 변화가 우리에게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지성의 힘과 정동의 진지를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남북의 분단 비정규직 노동문제, 자영업 위기, 민생경제 위기, 동북아 정세 등을 풀기 위해서는 대의제 하의 국회의원만으로는 안된다. 깨어있는 국민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의견 개진과 수용과 토론 등의 문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일베나 소위 태극기부대 같은 악다구니로는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고 국민은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소위 대깨문처럼 그땐 그렇고 지금은 다르다. 같은 편이라면 너희는 틀리고 우리는 옳다 아니면 그 정도로 그럴 수도 있지. 게네보단 덜한데 뭘 그래 이런 식으로는 국민에게 절망만을 줄 뿐이고 젊은 세대에게는 반감과 정치혐오를 줄 뿐이다.


왜곡되거나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가짜뉴스나 인신공격과 조롱은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우리는 혐오의 시대를 끊어낼 수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단식투쟁 앞에, 새파란 젊은이들이 피자와 짜장면을 비통해하는 유가족 앞에서 먹으면서 웃고 즐기는 모습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미친 반사회적 성격장애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이제는 인간이 아닌 좀비가 되어 버린 보수 우익, 꼴통 우익이라는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자초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비인간적 패륜을 우리는 애국이라고 볼 수 없다. 애국은 진정한 인간애 속에 평화와 자유를 추구함에 있다.


이를 묵인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이들은 혐오의 시대를 확장하려는 불의한 자다. 우리 사회의 집단지성은 이에 대해 충분히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토론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 백 년에 다시 후진적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군사독재는 혐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독재 세력의 유산과 피를 물려받은 집단과 정치세력이 분명 존재하고 선택의 수가 별로 많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합리적이고 건강한 정치 시민 종교 세력이 만들어져야 하고 집단지성의 힘이 작동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언론의 힘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언론도 정론직필이 아니라 혐오의 시대를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하고 최전선에 뛰어들어 이를 증폭 왜곡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 문제고 이를 방지하는 법의 느슨함은 더군다나 문제다.


죽일 듯이 물어뜯고 숨은 인터넷 공간에서 댓글로 저주를 쏟는 이런 혐오의 시대를 멈춰야 한다. 제도와 법으로서 관련 규정들을 만들고 시민사회나 기존 제도권에서도 반성과 자복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하나가 되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국가 위기와 재난에도 싸움박질 하는 모습을 멈춰야 한다. 침몰하는 배의 생쥐들이 싸우는 모습은, 남 탓과 비난만 하는 어리석은 모습은 멈춰야 한다.


심우기(시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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