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위례시민연대

활동마당

세부내용 목록
코로나 19로 무너진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박정인(법학박사)  |  view : 1048

나에게는 자폐성 장애라는 개성을 가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 있다. 아들의 장애가 발견되기 전까지 나는 공공기관의 박사로, 집에서는 큰며느리와 큰딸과 아내로 역할을 다하는 슈퍼우먼으로 육아와 일을 완벽히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장애는 요즘 겪는 코로나19와 같이 그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고 어린이집 어디에서도  내아들을 받아주겠다는 곳이 없어 결국 사표를 냈다.

여느 여자들처럼 엄마라는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육아만 하고자 하였으나 나의 지식을 아깝게 여겨주는 선배들의 끊임없는 돌봄으로 나는 계속하여 쉬지않고 대학과 협단체 등에 서서 강의를 하였으며, 또한 나에게는 친정과도 같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각 부서에서 자문 일거리를 계속 주셔서 경단녀가 되지 않고 재택을 통해 강의와 연구를 하며 장애가 있는 아들의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들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하며 지역장애인단체에 사무국장일을 하기도 하고 지역사회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하여 여러 시민단체에서 봉사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2017년에 한 공공기관이 연구일을 주면서 기존대로 대학의 산학협력단과 계약을 하여 자문을 맡기지 않고 나에게 직접 자문을 맡기고 싶다면서 별도로 개인사업자를 잠깐 내서 자신과 계약하기를 권유했고 나는 당해 연구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연구였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 해당 사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 당해 연구만 하고 바로 폐업을 하고자 하는 작은 연구소를 냈다. 

그런데 운명은 당해 연구용역이 끝나면서부터 연구소 소장이라는 이름을 원하는 많은 예술과 기술관련 협회와 단체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고충을 때로는 강연으로 때로는 원고작성으로  해주기 시작했다.

친절함에 목말라 있는 예술과 기술 관련 협회와 단체들, 예술가들, 학생들 사이에서 때로는 아무런 대가없이 플랫폼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들의 엄마처럼  욕먹는 총받이와 침받이가 될 수 있었고 그러한 산업계의 추천으로 많은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사회적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으로 인한 것이었다. 

비록 어린이집은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지만 송파구 내의 특수학교 유치원에 입학하여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지금까지 학교에 돌봄서비스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돌봄서비스가 공백이 생기는 경우에는 국가가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여 일정한 나의 바우처 생성 자비부담을 하면 국가가 교육시킨 활동지원사가 나의 자녀를 장애인복지관에 데리고 가서 보살펴주었다. 

게다가 어렸을 때는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며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있는 자녀를 위해 모든 위험을 제거하는 등 부모가 할 일이 많았으나 일정 수준 올라오니 이제는 사회가 학습터가 되어 

복지서비스들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테레사 수녀님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겁니다.”라는 말씀처럼 내가 국가위원일과 수많은 사람들을 자문하고 지원해주러 다니는 사이에 나의 자녀는 사회가 따뜻하게 돌봐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찾아왔다. 환영할만한 손님은 아니지만 우리가 보아온 폭력적인 전쟁과 같은 가시성은 적어서 코로나19의 위기는 일반인은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약자들에게 불어닥친 바람은 너무나 매서웠다. 학교가 무너졌다. 학원도 무너지고 지역사회의 모든 문화프로그램이 건전지 뺀 벽시계처럼 잠들었고 생기를 잃어갔다.

아들의 학교는 코로나19 접촉의 접촉자만 있으면 돌봄 서비스를 중지하고 있고 장애인복지관 역시 서비스를 중지한지 오래다. 심지어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당일 통지하면 그 날은 자녀의 돌봄에 공백이 생긴다.

그러나 이에 반해 코로나19로 나는 관련 자문이 증가하고 모든 강연을 비대면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의 양과 모든 내용들을 준비하는 일이 예전보다 2배 이상 증가하였다. 

집에는 돌봄의 공백이 생겨버린 장애자녀의 돌봄 공백이 그대로 나에게 전가되었고 일상보다 넘어서는 가중한 업무를 매일매일 버텨내고 있다.

만일 연구소 업무라면 내가 폐업처리하고 자녀를 돌보면 그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복수의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제공하고 있고 대통령이 임명해주신 국가위원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세금을 낭비하게 되는 일이 되므로 어느 하나도 대충할 수도 없고 어느 하나도 촉각을 곤두세우면 안되는 일들이다. 

정부도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이기에 무너진 돌봄 앞에서 속수무책이지만, 어떤 일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복지국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장애자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위례시민연대가 위탁운영하는 강동교육복지센터에서 꿈토링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내가 멘토링하는 학교를 가지 않은 학생의 경우, 집에 PC도 없다고 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동네 놀이터나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나의 자녀를 비롯하여 수많은 예쁜 아이들과 나의 학생들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코로나19는 어른들의 과오와 우리 자녀들과 약자들의 희생을 바꾼 것이라고 생각된다.

코로나19는 생각보다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다. 이제 우리 위대한 시민, 위례시민연대의 회원들이 모여 지역사회의 약자들, 코로나19와 같은 긴급 상황이 단기적, 장기적 발생시 아동과 장애인, 요양자들의 돌봄을 어떻게 지원하고 대응할지 우리 지역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토론과 협의를 하여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정인(해인예술법연구소 소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