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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의 싸움을 넘어 더 큰 평화체제로
송기호  |  view : 597

도쿄 요코타 군사기지에 ‘유엔군 후방사령부’가 있다. 유엔군 사령부 편람에 의하면 그 지휘관은 일본에서의 유엔군 사령관을 대표한다. 유엔군 사령부는 애초 영어로는 ‘UNFK’, 즉 주한 유엔군 사령부이다. 한데 왜 일본에 아직도 그 후방사령부가 있는가?


일본은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유엔군 사령부에 기지와 노무를 제공하기로 미국과 약속하였다. 이것이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딘 애치슨 국무장관과 함께 작성한 메모이다. 이 메모는 지금도 유효하다. 일본 방위연구소의 지지와 야스아키 연구원에 의하면 일본은 1960년에 미국과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하면서 이 메모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별도의 비망록까지 미국과 교환하였다. 미·일관계의 근간이다.


1953년 7월27일 한국전쟁 휴전 선언 때까지 유엔군 사령부는 계속 도쿄에 있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치른 유엔군 사령부의 기지 국가였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자신들도 한국전쟁을 치렀다고 믿는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에는 사실이다. 남기정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전쟁 시기 일본에는 773곳에 미군기지가 전개되었다. 일본에서 출격하여 한반도를 항공 폭격한 횟수는 약 100만회에 이른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위한 전투기지가 되었다. 만일 서울에 사령부가 있는 부대들이 일본에서 벌어진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면 서울 시민들도 자신들이 전쟁을 치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은 한국전쟁이 끝나자, 1954년에 11개의 유엔참전국들과 ‘일본에서의 유엔군 지위 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에서 일본의 군사기지를 군사물자 비축 기지로 제공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유엔사가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 존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가 1957년 유엔군 사령부가 서울로 옮긴 후에도 설치된 도쿄의 후방사령부이다. 후방사령부는 현재 일본의 7개 군사기지에 군사물자를 비축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후방사령부 체제는 일제 식민통치 36년을 훨씬 넘은 63년째 유지되고 있다. 이 압도적 시간에 걸친 구조를 시야에서 놓치고 식민지 시기만을 소환한다면 실사구시라 할 수 없다.


후방사령부 체제하의 대일관계는 언제나 대미관계이다. 일본의 끊이지 않는 한·일관계 왜곡은 미국 문제를 떼어놓고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과 2018년의 이른바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미국이 요구한 것이었다.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대규모로 군사력을 투사하고 있는 미국은 자국의 군사력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자유로이 통합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우선 추구한다. 일본에는 한반도 비상사태 발생 시 기지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일본은 기지를 제공하는 국가에 그쳐야지 스스로 전쟁을 결정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구조에서 한국은 최전선 국가일 뿐이다. 일본의 후방사령부는 최전선과 기지를 관리하는 장치이다.


대일관계의 목표를 후방사령부가 필요없는 평화체제에 둬야 한다. 아베 정권은 작년 7월 무역도발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애초 자기모순적 조치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국민의 의지를 집약시켜 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에서 성과를 냈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아베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책이 전부가 아니다. 아베로는 작다. 더 큰 평화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의 유엔사가 해체된다면 도쿄의 후방사령부는 자동적으로 소멸한다. 그러므로 후방사령부를 계속 유지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유엔사체제, 즉 정전협정체제가 지속되어야 한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적대적 구조가 영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아베와의 싸움이라는 작은 틀을 넘어야 한다. 동북아에서의 평화체제라는 근본적 목표를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 한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이 일본과 함께 어떠한 아시아를 만들어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포부를 진솔하고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현재의 대일관계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다. 아베 총리의 개헌에 반대하는 다수의 일본 시민들은 한국으로부터 분명한 소통과 행동이 있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일본이 주목하는 2018년의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그 의의를 일본인들에게 설명한 사람들은 일본 변호사들과 학자였다.


63년간의 유엔군 후방사령부가 필요없는 평화로 가야 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단지 일본 기업들에만 해당하는 판결이 아니다. 그토록 오래 피해자들의 인권을 온전하게 지키지 못한 자기 성찰이다.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평화체제를 앞장서서 만들라는 깨우침이다. (경향신문. 2020.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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