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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시 ⑤
심우기 (시인, 회원)  |  view : 694

300 이하 맛세이 금지


이장근



당구장 천정에 걸린 문구를 보고도


맛세이를 찍는다


100밖에 되지 않는 실력이지만


금지에 대한 나의 신념이다


금지에 지름길이 있다는 것


어릴 적 도덕 시간에 배우던


두꺼운 금지의 경서


믿지 않았다


한 장 찢을 때마다


날갯죽지에서 깃털이 돋았다


금지의 문을 열면 낭떠러지였지만


허공이 바로 길이었음을


경서에 맛세이를 찍으며 터득했다


‘말라’로 끝나는 경구를


‘하라’로 찍을 때마다


꿈틀대던, 꿈틀대던 날갯죽지


나 이외의 다른 나를 섬기고


나를 훔치고 희롱하고 죽일 때마다


나는 공중부양을 했다


남들은 그걸 후루꾸라 했지만, 상관없다


후루꾸에 대한 나의 신념이다



-시집 에서




당구장에서처럼 일본말이 남아 있는 곳은 없다. 나는 당구를 못 친다. 그래서 물 삼십이라 하고 아예 친구들이 끼워주려고 하지도 않고 나도 내심 당구가 싫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친구를 따라가서 나는 주인이 주는 요구르트를 먹고 점수 내기하는 친구를 구경한다. 맛세이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어중치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당구채를 들고 위에서 보통 당구공을 찍어서 치는 것인데 초보가 잘 못치면 당구대에 구멍이 나거나 찢기는 우가 생기니 모든 당구장 주인들이 커다랗게 붉은 글씨로 300 이하의 하수들에겐 맛세이 금지를 붙여놓았다. 당구 시를 읽다 보니 일본말 무지 쓰게 되었다. 야매 후르크 등등. 당시엔 맥주나 저녁내기 시합의 변변찮은 놀이가 당시에는 불량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이 시인은 하지 마라를 하라로 바꾸는 상상을 한다. 소위 정식 주법이 아닌 후루크 주법, 야매(뒷거래)의 공식을 주문한다. 그것으로 금기를 넘어 다른 세계를 찾는 것이다. 80년대는 음울하고 반항과 답답한 세계를 넘기 위한 날개가 필요하던 때가 아니었을까. 나 또한 얌전한 모범생의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금기와 터부를 넘은 절벽이나 낭떠러지를 맞아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 80년대 소위 시위와 투쟁이 나에게는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 놓은 덫을 밟아 뭉개본 것이 커다란 공중부양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후루꾸도 같이 묻어나는 세상도 괜찮지 않은가 획일화되고 균일화된 세상과 삶은 답답하다. 그것이 정상이고 원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없다. 모든 것에 정답이 없고 또 모두 답이 될 수 있듯이.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듯이. 저마다의 귀여운 후루꾸를 시도해보자


심우기(시인, 경원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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