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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간 ①] 연대법치 모델국가 비전과 탈군사주의 세계 전략

송기호 변호사 | 2020-04-24 13:15:33

감사하다. 4월 10일과 17일에 대구에서, 20일과 23일에 서울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와 싸워 거둔 중대한 성과이다. 도시를 봉쇄하지도 않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도 않고, 전 시민 외출금지 명령 없이 해냈다.

'차내 검사'가 상징하는 한국의 신속한 탐지 추적 모델은 세계 보건의 교과서가 되었다. 한국이 만든 코로나 진단시약은 유엔 세계보건기구(WHO)와 164개 회원국 정부가 앞다투어 찾는 중이다. 가락시장에 있는 나의 사무실에도 진단시약 국제거래를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국제 무역상들은 한국에 있는 작은 인맥이라도 잡으러 오늘도 뛰고 있다.

한국의 시간이다. 많은 시민들이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느끼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등의 취약성을 목격했다. 국제적 연대가 가장 필요한 때에 WHO 분담금을 끊어 버리는 미국 대통령의 행태를 보았다.

나는 이때, 시민들과 함께 성찰하고 싶다. 누가 한국의 시간을 만들었나? 이 역사적 시공간에서 세계를 향해 한국은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사회적 연대

한국의 시간은 한국이 만들었다. 미제 밀가루도 아닌, 박정희 반공주의도 아닌 바로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한 결실이다. 가장 최근의 제주 영리병원 반대 투쟁이 상징하듯이 시민들이 끈질기게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에 나섰기에 국민건강보험을 지켰다. 국민건강보험이 없었다면 한국의 비정규직과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 놓고 코로나 검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주의 비극은 이 땅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이글의 관심은 자부심의 내용이다. 자부심은 사회적 연대라는 한국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에 이르러야 한다. 광주 항쟁에서 대인동의 성노동자들이 시민군에게 해 준 주먹밥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사회적 연대 위에 서 있다. 동학에 대해 '부적'을 붙인 미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조선-중화 질서의 신분적 억압체계에 대항하여 노비들이 농민군의 지도자가 되고 노비 폐지와 과부 재혼 허용을 요구한 개벽(開闢)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한국전쟁 시기에도 농지개혁을 했다.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박근혜 탄핵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연대는 한국의 본질적 가치이다. 전국의 약사들이 약국 일반 영업에 지장을 받으면서도 공공 마스크 공급에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 사회적 연대 가치이다. 한국은 미국과 다르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은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가져온 불평등 구조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였다는 자부심이기를 기대한다.

개방성과 투명성

조금 뜻밖이겠지만, 한국의 자부심은 한국 법치의 가치에도 이르러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유신헌법과 같이 독재자들이 법을 폭정의 도구로 삼았음에도, 한국 법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에 성공하는 것이 한국의 국제적 역할에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대응에서 한국의 법치는 선진국 법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한국 법치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통하여 코로나 대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점이 중국과 다르다.

만일 중국이 애초 우한의 의사 리원량이 처음으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 역병의 출현 위험을 용기 있게 알린 경고를 존중하였다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였다면 비극적 참사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새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전염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더 일찍 인민들에게 알렸어야 했다.

법치(法治)는 사회적 연대와 마찬가지로 한국 민중이 성취한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1919년의 대한민국 인민이 성취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한국 법치 개벽이다. 헌장은 대한민국의 민주 공화제를 천명했다. 그리고 인민에게 선거권을 비롯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부여하였고 사형제를 폐지하였다. 박근혜 탄핵은 국가가 국민의 것(Res publica)임을 확인하는 법치 운동이었다.

한국의 시간은 한국이 만들었다. 한국은 미국도, 중국도 갖지 못한 독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이를 '사회적 연대 법치'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이 한국의 시간을 만들었다.

나는 희망한다. 칭송받는 데에 머무르기에는 한국은 배고프다. 분단과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 힘은 사회적 연대와 법치의 모델국가가 되어 탈(脫)군사주의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 힘은 군사력에서도, 삼성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국제 사회가 절실히 요구하는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는 '모델국가'일 때, 한국은 분단과 불평등을 해결할 국제질서를 주도할 수 있다.

송기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