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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9번째 거부권, 이태원 참사 특별법 -
개헌과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시민운동이 해결의 첫걸음이다.
안성용 위례시민연대 공동대표  |  view : 81

대통령의 9번째 거부권, 이태원 참사 특별법 

 - 개헌과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시민운동이 해결의 첫걸음이다.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9번째 거부권이다. 이미 윤 대통령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루어진 개헌을 통해 출범한 제6공화국에서 거부권을 가장 많이 사용한 대통령이었는데, 그 스스로 기록 경신을 또 했다. 

 

윤 대통령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 방송법 3개 개정안, 50억 클럽 특검법,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농민, 간호사, 노동자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법들과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을 거부하였고, 자신과 가까운 이들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확실하게 보인 것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입법부를 견제할 이유가 있을 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만든 법률안이 위헌 요소가 있거나 국익에 반하는 등의 명백한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권한이다. 그런데 법조계 인물들과 배우자 보호를 위해 거부권을 사용한 데 이어, 159명의 희생자를 낸 대참사의 진상규명 특별법까지 거부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다. 즉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의 기본 책무를 외면하는 것이다. 

 

1월 29일 오후 1시 59분에, 특별법의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4대 종교(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인들,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모여,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1.4㎞ 구간 도로에서 온몸이 땅바닥에 닿도록 큰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하였다. 지난 1월 19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정부로 이송되었는데, 국무회의의 결정을 앞두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며 간절한 호소를 해왔다. 그중에는 뜨거운 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삼보일배를 한 일도 있고, 혹한과 폭설의 날씨에 오체투지 한 일도 있다. 부모들이 자식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으며 삭발도 했다. ‘진상규명을 해달라’,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당연하고 단순한 요구를 그간 정부여당은 외면해왔다. 유가족들과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해 온 많은 이들의 간절한 노력 끝에 올해 1월 9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들에서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태를 수습하고 원인을 규명하며, 책임자들을 처벌하며,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유사 사태를 방지하고, 백서를 발간하며, 기억의 공간을 마련하는 등 일련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까지 이런 것들은 말뿐이다. 

 

한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대해서 그들이 잘못했을 때, 주권자인 유권자들이 직접 소환할 수가 있다. 즉 주권자들이 직접 뽑은 선출직 공무원을 직접 사퇴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게 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유는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공천하는 국회의원들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유권자들의 입장에 서서 일하지 않고,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그래서이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법 제정권을 통해 지방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주민소환제도를 매우 까다롭게 만들어, 유권자들의 소환을 제지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 대통령은 탄핵할 수가 있다. 2016-2017년 우리는 그것을 경험했다. 주권자의 선거로 뽑힌 대의자인 국회의원들이 주권자들의 강력한 뜻에 따라 행동한 결과였다. 물론 이 탄핵의 요건 또한 까다롭고 오직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많은 이들이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가슴 졸이며 기다리게 한 이유이다. 주권자의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에 대해 주권자가 직접 소환하는 제도는 없다.  

 

한편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소환제도 자체가 없다.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4년마다 선거를 통해 새 인물을 뽑는 것밖에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주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제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서, 주권자가 그들의 잘못에 대해 직접 바로잡는 권한을 행사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시군구의원부터 단체장, 국회의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에 대해 유권자가 직접 소환하는 국민소환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유권자의 일정 수가 정책을 제안하면 국회가 이를 받아 반드시 입법 활동을 하는 국민발안제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국민투표에 대해 유권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소환제, 발안제, 국민투표권은 주권자가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실은 지금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37년 전과는 상당히 변화된 사회이다. 따라서 현실에 맞지 않는 현행 헌법과 하위 법률들을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개헌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정치면에서의 핵심 과제만 생각해본다. 

 

종기가 곪으면 터진다. 모순이 쌓이고 제도를 통해 해결되지 않으면 비제도적인 방식의 문제 해결력이 커진다. 4.19나 6월항쟁처럼 또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민의 힘이 지난 2016-2017년처럼 다시 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를 바로 앞두고는 대다수 시민은 일단 제도적인 방법을 택한다.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시민들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민생문제, 경제문제, 평화문제, 생태문제 등 많은 과제의 해결을 요구해야 하겠지만, 정치면에서는 소환제, 발안제, 국민투표권을 주장해야 한다. 특히 이 중 국회의원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이 소환제이다. 이것이 정치 개혁의 핵심이다. 이를 시민들이 강력히 주장하며, 이에 부합하는 의사를 가지고 총선에 임하는 후보 및 정당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 선거 때만이 후보들과 정당들이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운동에 함께 나서기를 바란다. 이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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