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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 사회 ‘노동 문제’를 돌아보다.
안성용 (위례시민연대 공동대표)  |  view : 104

안녕하세요. 가수 이효리입니다.
추위와 폭설로 마음까지 꽁꽁 얼 것 같은 요즘 다들 안녕하신지요...
제가 이렇게 펜을 든 이유는 노란봉투 캠페인에 동참하고 싶어서입니다...
지난 몇 년간 해고노동자들의 힘겨운 싸움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잘 해결되길 바랄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 뜻과 달리 이렇게 저렇게 해석되어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아이엄마의 편지가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아이의 학원비를 아껴 보낸 4만 7천원,
해고노동자들이 선고받은 손해배상 47억 원의 10만분의 1,
이렇게 10만 명이 모이면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살릴 수 있지 않겠냐는 그 편지가 
너무나 선하고 순수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 편지는 ‘너무나 큰 액수다’, 또는 ‘내 일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모른 척 등 돌리던 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적은 돈이라 부끄럽지만, 한 아이엄마의 4만7천 원이 제게 불씨가 되었듯,
제 4만7천 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리길 바랍니다.
돈 때문에… 모두가 모른 척하는 외로움에 삶을 포기하는 분들이 더이상 없길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2014.2.14 효리

 

 

법원이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회사에 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해고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당시 제주에 살던 가수 이효리씨가 시민단체에 돈을 보내며 함께 부친 편지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10년간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기업의 노동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손해배상 청구 행위를 비판하며, 국회 청원, 청와대 청원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는 2003년 두산중공업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파업으로 저항하다 징계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하자 故배달호씨가 목숨을 끊은 때부터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었으니 실은 20년 된 문제다. 당시 배씨의 나이는 50세, 통장에는 2만 5천 원이 전부였다). 

 

그러다 드디어 올해 11월 9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과도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 법은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노동자들에게 아예 면책권을 주는 법이 아니다. 쟁의 중 불법행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는 해당 불법행위에 노동자가 관여한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묻도록 했다. 다만 노동자의 ‘신원보증인’이 보통 가족인 점을 고려하여 이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책임을 면책하는 내용이 포함됐을 뿐이다. 손해배상에 따른 부담으로 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 행동권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따라서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이 개정안이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는 매우 모자란다고 비판했지만 여야 합의 및 국회 통과를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폐기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애초 더 큰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시절 180석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았던 이 법을 개정하지 않았던 점이다. 결국 최근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표를, 정부 여당은 기업인들의 표를 의식하여 각각 행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매일 언론에 보도되는 인명 사고가 그것이다. 


2018년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故김용균씨의 사건을 계기로,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2년째를 맞은 올해까지도 책임자 처벌, 사망사고 감소 등에서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법에서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말한다. 


중대산업재해란 ①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② 동일한 사고로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③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산업재해를 말한다. 이는 민간 기업만이 아니라 공공기관에도 해당된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숫자는 2022년에 2223명인데, 874명은 사고로 1,349명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용노동부가 8월 30일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산업재해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재해 사고사망자는 289명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사고사망자가 147명, 제조업 사고사망자는 81명, 기타 등이었다. 규모별로는 50인(억) 미만 사고사망자가 179명이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인(억) 이상 사고사망자는 110명이었다. 중소기업이 더 취약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2024년 1월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이 법의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50인(억) 이상 사고사망자와 사고 건수는 제조업에서는 전년 대비 모두 감소한 반면, 건설업과 기타업종에서는 크게 늘었다. 특히 대기업 건설사의 중대재해는 매년 증가 추세다. 이는 건설업 특히 대기업 건설사의 안전불감증과 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 때문이다. 

 

한편 대법원은 지난 12월 7일 고 김용균씨 사고와 관련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사건 이후 5년 만의 판결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전이었지만 기존 법률로도 충분히 원청에게 죄를 물을 수 있고, 물어야 했던 사건이었다. 원청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직접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했고 보고를 받았고, 또 많은 안전사고가 이미 있었음에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원은 이를 바로 잡아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한편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로서 중대산업재해와 유사한 피해가 발생한 재해를 가리킨다. 올해 일어난 분당 정자교 붕괴 사고, 청주 오송 지하차도 사건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절대다수 보통 시민들은 사회의 재해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올해 9월 26일 ‘택시 완전월급제 도입’을 외치며 서울 양천구 해성운수 앞에서 분신한 뒤 10월 6일 숨진 택시노동자 故방영환씨(55세) 사건이 있었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개정 택시운수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은 택시 운송종사자의 노동시간이 1주 40시간 이상이 돼야 하고, 회사가 일정한 기준액을 정해 노동자에게 운송 수입금을 받아서는 안 되고, 회사는 1주 40시간 이상(월 209시간 이상)의 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법에 택시월급제나 완전월급제같은 용어는 없지만 노동계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택시발전법, 최저임금법 조항 등을 묶어 보통 ‘택시월급제법’이라고 부른다. 

 

왜 방영환씨는 분신을 했을까? 
그는 2008년 택시 일을 시작했다. 동훈그룹 소유의 주호교통에 2012년 입사해서 일하다가 2017년 같은 그룹 산하 해성운수로 전근했다. 동훈그룹은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해성운수를 비롯해 택시회사 21개, LPG 충전소 3개, 정비소 1개, 호텔 9개를 소유한 기업이다. 
그는 2019년 해성운수에서 택시업계의 부당한 관행과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동조합설립을 주도했다. 그러자 회사는 그에게 폐차 직전의 차량을 배차하거나, 한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난 차량의 운행을 강요했다. 또 하루 3시간 30분만 운행하도록 해 임금을 줄이고, 이에 따라 사납금 기준에 미달한다며 아예 임금을 지급하지 않기도 했다. 회사는 부당 노동계약서를 쓰기를 거부하는 그를 2020년 해고했다. 그러나 해고 이후 그는 2년 8개월간 배달 일을 하며 복직 투쟁을 벌였고 2022년 10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확정판결을 받아 11월에 복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복직 이후에도 그와 동료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여전했다. ‘사납금 제도’ 때문이었다.
사납금 제도는 노동자가 회사에 하루 수입 중 일정액을 사납금으로 내고, 그 외의 수입을 임금으로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높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장시간 노동과 졸음운전, 교통 위반 등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고, 승객이 적은 날에는 사비로 사납금을 채워 넣어야만 했다.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2020년 사납금제도는 폐지되고 ‘전액관리제’로 바뀌었다. 더불어 서울시에선 전액관리제와 함께 2021년부터 이미 월급제(소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주 40시간 이상)가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해성운수를 비롯한 많은 택시 회사가 편법으로 ‘기준운송수입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사실상 ‘변종 사납금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방씨는 이런 부당한 내용의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며 복직 이후에도 투쟁을 이어갔다.
그는 주 6일 40시간을 근무했지만, 회사는 하루 3시간 30분만을 근로로 인정해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월 100만 원만 월급으로 지급했다. 또 해성운수 대표를 비롯한 관리자들은 온갖 괴롭힘과 범죄를 저질렀다. 

 

방씨는 올해 2월부터 해성운수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의 요구는 월급제 준수, 체불임금 지급, 사주 등 책임자 처벌이었다. 그러다가 9월 스스로 삶을 놓았다. 방씨는 법을 어기는 회사와 부당노동행위와 범죄 행위를 관리 감독하고 수사할 책임이 있는 서울시, 고용노동부, 경찰 등 기관에 절망했을지 모른다. 억울함을 말하고 진실을 외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무력감, 이미 있는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절망했을지 모른다. 

 

결국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노력과 언론 보도 등으로 인해, 해성운수 정모 대표(51세)는 근로기준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모욕, 특수협박 혐의 등으로 12월 18일 구속기소됐다. 또 정 대표는 방씨가 숨진 지 1달도 되지 않은 11월 3일 자신보다 20살이 많은 직원 ㄱ씨(71)를 구타했다. 정 대표로부터 구타를 당한 ㄱ씨는 전치 4주 이상의 안와골절상을 입었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정 대표는 사건 이후 ‘아무런 책임도 미안한 감정도 없으며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도 없다’는 등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았다”며 “방씨 사망 후에도 다른 노동자를 구타하는 등 폭력성과 노동자 멸시 성향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재 그의 동료들이 강서구청 사거리 길바닥에서 이 추운 날 ‘완전월급제 이행!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택시노동자의 분신은 1986년 부당해고에 맞서 故변형진씨가, 1987년 노조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故이석구씨가 세상에 호소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오늘 다룬 위의 3가지 외에도 노동 부문에는 시급한 현안이 많다. 지면 관계상 더 쓸 수 없을 뿐이다. 생명, 안전, 노동의 문제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다. 재해와 노동자탄압이 계속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 사회 경제활동인구의 절대다수가 노동자, 자영업자이다. 노동자와 자영업자는 자리바꿈을 자주 한다. 또 그들의 자녀 절대다수가 노동자, 자영업자가 된다. 따라서 노동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 제도를 개선하고, 제대로 관리 감독하며, 또 미리 사건 사고를 방지해야 한다. 
OECD 가입국이고 세계 10대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이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해결을 정치인, 관료, 기업에 기대하기 어렵다. 세상은 변해야 하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시민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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