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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경제통신(23년 38호)
이승무(순환경제연구소장)  |  view : 150

2023년이 다 지나가고 있다. 요즘 “서울의 봄”이라는 12.12 사태를 다룬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영화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있겠지만 누구든 그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에서 그 영화를 통해서 보인 것이 있을 수 있다. 하나회라는 사적인 패거리의 조직문화는 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다. 그런 패거리 조직을 수단으로 더 높이 승승장구하려는 야망, 권력의지 이런 것이 아주 솔직하게 표출된 사건이었음을 보여준다.

 

 서울 송파구 의회에서는 12월 19일에 <송파구 방사능 등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식재료 공급에 관한 조례안>이 반대 14, 찬성 11, 기권 1로 부결되었다. 2020년도에 의원들이 아닌 송파구 주민들이 길거리에서 주민들의 조례안 직접 발의를 위해 서명을 받아서 9천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었다. 그렇게 서명을 받아 조례안이 발의되려면 유권자의 2%에 달하는 주민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그 숫자에는 못 미쳤다. 그런데 그 후에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 서명자 수가 유권자의 1%에 달하면 조례안이 발의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올라온 조례안을 심사하는 구의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그 조례안이 부실하다고 해서 단순히 기각시켜 버리고 말았다. 의회 측의 처사가 주민들이 만들어온 조례안에 대해서 제대로 된 법령안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하고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기각시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주민들의 항의를 받은 의회에서는 다시 의원들이 주도하여 같은 내용의 조례안을 만들어서 상임위원회를 통과했고, 그것이 본회의에 올라가서 부결되고 만 것이다. 민망한 일이지만, 반대 14표와 기권 1표는 특정한 어떤 정당의 의원들이었고, 찬성 11표는 그와 다른 어떤 정당의 의원들이었다고 한다. 방사능으로 바다가 오염될 우려가 큰 시점에 학교나 어린이집 급식에 공급되는 식재료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마련된 조례안에 대해 정당 간의 표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당론으로 어떤 지침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한 것을 말해 준다.

 

 후세의 건강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조례안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속한 당(黨)이 정한 것에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정치도 조직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니 조직적인 행동에 단합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도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기가 지지하여 속한 당이 바라보는 현실 그리고 미래 목표는 어떤 것이며, 그 현실관과 미래 사회에 관한 목표와 그 당 의원들의 투표행위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인가?

 

 아마도 일부 잘못 생각하는 세력들이 일본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에 따라 행하는 방사능 오염수 투기의 위험성을 부풀려서 정치적 목적으로 이를 증폭시킨 것이 현실이라고 보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미래 목표는 한국, 미국, 일본이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단합된 동맹체가 되어야 번영을 누리고 계속해서 더욱 더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동맹체제를 확고히 하는 쪽으로 나가고 북한을 힘으로 제압하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는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들을 멀리하는 정책을 취한다는 것일 것이다.

 

 말하자면 거대 이념에 기초하여 현실을 바라보고, 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보건사회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라보는 거대한 역사관과 이념의 영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고 이 생각을 표출할 수 있다. 어디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다양한 관점들을 가지고, 서로 토론과 논쟁을 하는 것이 복잡한 현실에 더 정확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분야에서의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의 보건 사회정책에서 건강에 위험을 끼칠 요소에 대한 대비를 하는 정책을 만드는 데 거대 이념에 의존해서 실제로 주민들의 우려를 사소한 것으로 보고 물리친다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민주주의 정치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행태가 된다.

 

 이 사안에 대해 큰 줄기를 판단하여 방침을 정한 중앙 정치무대의 지침을 받은 것이며, 이는 주민들의 여러 가지 염려하는 생각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의원들은 이 둘 사이에 간극을 좁히려고 하면서 어떤 것이 지방의원의 책임으로서 취해야 할 방안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별 고민 없이 일사불란하게 중앙정부와 중앙당의 지침을 따랐다면, 이는 지방의원으로서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을 유지하고 앞으로 뻗어나갈 기회를 차단당하지 않으려는 고려에서 나왔다고 보인다.

 

 개인의 앞으로 잘 되어 나갈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을 보전해야 할 의무와 상충된다고 할 때 <서울의 봄>에서 그 패거리들이 취한 태도는 그 둘의 방향을 일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지만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그 양심을 의심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의 행태에서도 비슷한 것을 보게 된다.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이 비합리적인 왜곡된 정보조작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민들의 목소리와 행복이 기준이 되지 않고 UN이든 IAEA이든 환경부이든 더 큰 이성이 판단을 내려주는 것을 정확하다고 보는 것이 지방자치단체 의원이 취할 수 있는 태도인가?

 

 자기 일신이 앞으로 승승장구하게 잘 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고려와 정치 행위에서의 선택 사이의 고민은 어느 정당 소속자나 어느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힘을 가진 대세를 대표하는 단체에 가담한 입장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별로 없을 수 있다. 그런 단체의 입장을 오차 없이 잘 대표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과도 일치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善)의 목표를 향해 현실을 개선해 나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자기 이익을 보호, 추구하고 자기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고, 현실의 권세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승승장구해 나가는 편리한 방법이다.

 

 <서울의 봄>이 있은 지 4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대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공적인 무대에서 줄서기를 하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임을 그들만 깨닫고도 말로는 하지 못하고 비밀에 부친 채 그렇게 사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인가?

 

 2023년은 질문과 또 질문 속에서 저물어간다. 수백 년 수천 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질문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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