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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개혁 운동의 현황
김찬휘(위례시민연대 회원. 녹색당 대표. 2024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대표)  |  view : 310

선거제도개혁 운동의 현황
-개혁 이전에 ‘개악’부터 막아야 한다.- 

 

 

1.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시도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국회 전원위원회와 국민 공론조사로까지 확장해 가던 국회가 갑자기 7월, 거대 양당의 원내부대표와 정개특위 간사만이 참여하는 ‘2+2 협의체’를 꾸리더니 논의를 밀실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밀실 논의의 실체는 8월 31일 언론을 통해서 흘러나왔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병립형으로 바꾸고, 비례대표제를 3~6개의 권역으로 나눠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8801#home)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은 8월 31일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등과 국회 앞 계단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기획을 규탄했습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준연동형 비례제 폐지를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개시했습니다. 9월 1일 국회 본관에서는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녹색당의 ‘병립형 회귀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의원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준연동형 폐지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3개 권역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만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어 9월 14일에 다시 민주당 의원 총회가 열리고 이번에는 정말 ‘병립형 회귀’ 결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지 국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이 국회 본관에서 반대 농성을 하는 가운데 민주당 의원 총회가 열렸지만, 다행히 준연동형 폐지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의원 총회 후 이탄희 의원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의원 55명이 ‘병립형 회귀 반대’에 서명했음을 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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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민주당 이재명 대표 단식이 시작되고 체포동의안 가결이 이루어지면서 거대 양당 간의 관계가 경색되었고, ‘2+2협의체’가 준비하고 국회의장이 지지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시도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수 있기에, 그 문제점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2. 비례대표제 병립형 회귀의 의미 

2020년 총선에서 3당, 4당, 5당이 합쳐 21.9%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세 정당의 의석수는 4%(12석)에 불과했습니다. 연동형이 아니고 ‘준’연동형인데다가, 1당과 2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뺏어갔기 때문입니다. 세 정당은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26석의 비례의석을 받았어야 했는데, 위성정당 때문에 비례 11석밖에 못 얻었습니다. 47석이 모두 준연동형이 된 지금이라면 34석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준연동형을 병립형으로 바꾸어 2020년 총선에 적용하면, 세 정당의 비례의석수는 10석이 됩니다. 두 거대정당 입장에선 위성정당보다 더 효과가 좋네요. 그래서 두 거대정당은 병립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도 위성정당 만든 효과보다 더 좋으니, 체면도 실리도 함께 챙길 수 있습니다. 

 

3.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문제점

비례대표제를 지금처럼 전국단위 명부로 하지 않고 3개 권역(예컨대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으로 나누게 되면, 정당은 3개의 권역별 명부를 제출하고 각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서 권역별로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게 됩니다. 권역별로 바뀌더라도 준연동형이 유지된다면 전국 단위의 결과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병립형 회귀가 이루어져서 ‘병립형+권역별’이 되어 버리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비례대표 47석이 15, 16, 16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해 보죠. 전국 득표율이 4%이고 3개 권역에서 각각 5%, 3%, 4%를 얻은 정당이 있다고 봅시다. 병립형이라면 15 × 0.05 = 0.75석, 16 × 0.03 = 0.48석, 16 × 0.04 = 0.64석이 됩니다. 정수 의석이 없지만 나머지가 크면 의석 1석을 받을 수 있으므로 1~2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최악의 경우 0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단위 병립형이었다면 47 × 0.04 = 1.88석으로, 1석은 보장되고 2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달랑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가지고 ‘병립형+3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구성하게 되면 두 거대 정당의 의석비율은 2020년 총선의 94.33%를 넘어 98%가 될지도 모릅니다.   

 

4. 해결 방향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무조건 ‘악’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전국단위를 권역단위로 바꾸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 두 개가 필요합니다. 첫째, 비례대표제 의석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안 그래도 비례대표 의석수가 적은데 그것을 권역별로 또 쪼개버리면, 위에서 보았듯이 득표율 ‘장벽’만 높아지게 됩니다. 박근혜 정부였던 2015년에 중앙선관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지역구는 200석, 비례대표는 100석으로 제안했습니다. 양당은 박근혜 정부 때의 1/2도 안 되는 비례의석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이려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려면 전국단위 3% 봉쇄조항은 없애야 합니다. 지금의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에서는 전국 득표율 3%만 넘으면 의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발의된 공직선거법 개정안들은 권역별로 바꾸면서도 전국단위 3% 봉쇄조항을 유지하게 설계한 결과, 전국 3%를 넘고 동시에 권역에서는 그보다 높은 장벽(16석 권역이라면 6.25%)을 두 번 넘어야 의석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두 장벽 중에 한 장벽이라도 못 넘으면 원외로 쫓겨납니다. 결국 그 의석은 거대 양당이 전부 거두어들이게 됩니다.   


9월 1일 국회의장은 이 두 전제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가리켜 “지역균형비례제”라 칭송하면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를 극복할 디딤돌을 놓게” 되었으며 “지역소멸시대를 지역균형발전시대로 돌려놓을 든든한 힘이 생긴 것”이라 극찬했습니다. 영호남을 섞어서 권역을 만들어, 영남 출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생기고 호남 출신 국민의힘 비례대표 의원이 생기는 것이 대체 ‘지역주의 극복’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올해 5월에 실시한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서는, 단 몇 시간의 설명과 토론을 거쳤을 뿐인데도 숙의 후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에 대한 지지가 20%포인트 증가하여 58%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말로는 “비례성”과 “대표성”을 외치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거대 양당은 국민의 숙의토론 결과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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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병립형 회귀를 막아야 합니다. 동시에 비례 의석이 늘지 않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막아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분들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민주당 의석이 많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신다면, 180석을 얻었던 민주당의 초라한 개혁 성적표를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 의석이 늘어나야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밖의 건강한 개혁진보세력의 힘이 늘어나야 민주당 내의 보수적 의원들을 견제하고 민주당 내 소수 개혁 의원들이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정치다양성’을 높이고, 비례성을 늘리는 것이 개혁을 이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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