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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였던 청년의 죽음
송기호(변호사)  |  view : 105

첫 음절은 신(神)이었다. 민주공화국을 세운 1919년 최초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시작하는 첫 어구는 ‘신인(神人)의 일치’였다. 일제강점의 처절한 고통을 끊어내려는 지극한 절규가 헌법의 맨 앞에 ‘신’이라는 소리를 벼리었다. 결코 해방을 포기한 적이 없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광복 78주년 아침, 해방 조국의 대통령이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는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시간, 서울시청 광장 앞 분향소에는 어머니가 쓴 글이 붙어 있다. ‘나의 전부인 내 아들, 영원히 사랑해.’ 어머니의 아들은 소꿉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슬프게도 친구들은 이십대 후반, 그다음에 올 눈부실 날들을 더 잇지 못했다.

 

김용건 청년은 오랜 벗, 어릴 적 친구 조경철 청년과 분향소 영정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그러나 두 청년을 해방 조국이 지켜주어야 했다. 그리고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골목 동무들의 어머니들만 아들을 가슴에 묻지 않았다. 해병대 1사단(사단장 소장 임성근) 대원이었던 채수근 청년은 스무 살 그다음의 시간으로 그를 위해 예비되었을 찬란한 아침들을 이제는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붉은색 해병대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전우들은 거친 물살에 들어가 수해 지원 수색 임무에 투입되어도 안전할 만큼의 구명조끼를 지급받지 못했다. 그러나 사단장은 수중 수색을 지시했다. “무릎 아래까지 물에 들어가서 찔러 보면서 정성껏 탐색”하라고 지시(군인권센터 자료)했다. 사단장은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이 현장 방문을 할 것이라는 전파를 3번 했다. 그리고 붉은색 해병대 복장 통일을 지시했다. 해병대원이었던 청년은 구명조끼를 받지 못한 채, 마찬가지 상태의 옆 병사들의 손에 손을 잡은 인간띠에 의지해야 했다. 그는 거친 물살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강물을 주시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물 밑의 모래 바닥이 갑자기 꺼져 무너졌다.

 

20년 넘게 변호사를 직업으로 한 사람으로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사단장에게 법적 책임이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에 동의한다. 사단장은 수해 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부하의 생명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안전장비 지급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수중 수색을 지시했다.

 

신으로 시작하는 첫 헌법을 가진 나라의 광복절에 이십대 청년들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묻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하는 반국가세력은 누구일까? 그가 자신의 음성으로 읽은 ‘제78주년 광복절’, 바로 그 광복을 처절하게 염원한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형제를 폐지했다. 이미 100년 전에, 이 땅의 사람들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적어도 그 낱말이 광복절 경축사에 담겨 있다면, 반국가세력이란 뜻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세력이다. 그렇지 않은가?


해병대원이었던 청년의 유족은 창자가 끊이는 고통 속에서도 장례식 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해병대 가족의 일원으로서 국민과 함께 해병대를 응원하며 해병대가 더욱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겠습니다.”

 

이제 국가가 어머니들에게 대답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어머니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해병대 사단장에게 법적 책임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을 ‘집단항명죄 수괴’로 몰아 수사하는 중이다. (이 글을 완성하는 순간에는 수괴를 삭제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보직을 해임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심지어 군사법원법에 따라 경찰로 이첩했던 수사자료마저 회수했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은 지난 9일 군사법원법에 따라 수사자료를 있는 그대로 경찰에 이첩하라고 요구했다.

 

어찌 청년들만이겠는가? 해병대였던 청년이 물 밑의 모래 바닥이 무너지는 것을 발바닥의 감촉으로 느껴야만 했던 바로 다음날, 인천 주안의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선 하청 노동자가 53m 높이에서 떨어져 다시는 가족을 보지 못하게 됐다. 같은 날 서울 중구 공사 현장에선 노동자가 가로등 점멸기를 교체하다 감전돼 다시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오마이뉴스).

 

광복절 78주년을 지나며, 1919년 이 땅의 민중이 쓴 헌법을 읽는다. 헌법 첫 글자인 신의 뜻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위 글은 23.08.15. 경향신문 기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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