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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 특별법)을 넘어
안숙현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민생센터장)  |  view : 169

정의당 서울시당 6411민생센터에서는 3월부터 전세사기 및 깡통전세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 소위 ‘빌라와’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주거권 단체들은 이미 그전부터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가 많을 거라 예상해왔다. 전세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이 고금리이기 때문이다. 

 

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매일 6~7건의 피해 사례를 접하고 상담을 한다. 사회 초년생들이 전 재산과 대출금을 쏟아부은 나의 보금자리가 전세사기의 피해라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고, 놀란 가슴으로 전화를 했다. 아이를 갓 낳은 신혼부부가 이제 어디로 가냐며 울며 전화를 했다. 경매 통지서가 날아왔는데 어떻게 하냐며, 임대인이 전화를 안받는다며 전화를 했다. 

 

시세보다 저렴해서,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이 가능하다 해서, 심지어 전세 대출의 원금 일부와 이자를 대신 갚아준다고 해서, 공인중개사가 자신하고, 임대인이 건물 몇백채를 가진 자산가라서 안심하고 들어간 집이었다. 그런데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었고, 보증금을 단 한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보증금을 단 한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더 끔찍한 것은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더 알아보지 않았을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데 이자를 갚아준다고 했을 때 의심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자책하는 것이다.  

 

상담 전화 너머로 떨리는 음성,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이야기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나쁜거”라는 이야기다. 진심이다. 


건축주, 임대인, 공인중개사 모두가 짜고 사기를 치겠다 마음먹은 전세사기를 대체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절망으로 2700여 세대가 피해를 입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4분이 목숨을 잃고서야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가 특별법의 이유를 설명하고, 특별법 조문을 만들고 집회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국회에서 농성을 하고서야 겨우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반쪽짜리 법이다. 피해를 증명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데 여러 조건을 다 갖추어야 피해자로 인정한다고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자기가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잠적해버린 임대인을 어떻게 찾는가? 피해자가 집단이 아니고 한 두명이면 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는가? 

 

어렵사리 피해자로 인정받더라도 대책이 신통하지 않다. 경매에 넘어간 집의 우선 매수권은 보장된다지만 이미 사기로 보증금을 다 날렸는데 집을 살 돈은 어디 있는가?


정부가 돈을 투여해서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대신 경매로 넘어간 집에 경매대금이 들어오면 정부가 이것을 가지면 된다. 은행과 기업의 부실채권을 째깍 사주는 정부가(강원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자 마자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여했던 사실을 잊었는가) 전세사기 피해 매물만은 사줄 수가 없다고 한다. 오직 피해자에게는 저리 대출만 해주겠다는데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다시 대출을 받아서 끔찍한 전세로 들어가라는 이야기다. 대출금 목적은 오직 전세 보증금이어야만 한다고 한다.  

 

피해자 대책위와 시민사회단체, 법을 발의했던 정의당은 추가 입법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온몸으로 만들어낸 특별법의 보완을 위한 험한 여정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와중에도 특별법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세사기, 깡통전세 피해자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 현재 피해자 대책위 카톡방에는 1300여명이 피해자가 모여있는데 연일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 관여하면서 특별법을 넘어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전세제도에 대해서, 한국사회 임대차 구조에 대해서 말이다. 자기 자본금이 10%만 있어도 대출받아서 언제든 투기를 할 수 있는 이른바 ‘갭투자’가 가능한 것은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을 마치 자기 돈처럼 취급하는 것 때문이다. 이는 오랫동안 만들어져 온 불평등한 임대차 관계에 기인한다. 전세 보증금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빌리는 채무다. 언젠가는 돌려줘야 하는 돈이란 말이다. 

 

임대인들은 이런 구조에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도 너무나 뻔뻔하게 군다. 전세사기 가해자들은 느슨하고 불평등한 임대차 시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양심의 가책없이 자기 투자금으로 사용한다. 투자를 실패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거나 일부러 돌려주지 않아도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른 일당중 일부가 구속되어도 나머지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같은 수법으로 또 사기를 친다. 전국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다. 심지어 경매로 나온 전세사기 피해 건물을 일당중 한명이 저렴하게 구매하면서 피해자들에게 다시 전세로 들어오라고 한 경우도 있다. 

 

전세자금 대출할 때 임대인의 신용을 들여다보고 건물의 감정을 매겼던 은행은 임대인들이 사기꾼임이 들통나도 아무런 책임없이 임차인의 전세 대출금을 회수하는데만 심혈을 기울인다. 애초에 은행이 감정만 잘했어도 일부는 피해를 입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은행에는 책임이 없을까?   


빚내서 집사라며 무한정 대출을 풀었고, 이로 인해 전세가가 올라갔고, 고금리라는 세계의 추세 앞에서 많은 수의 자국민이 피해를 입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도 나몰라라 했던 정부, 사회적 재난 상태니 개입해서 해결하라는 시민들에게 혈세남용 운운하며 방관했던 정부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는 지금의 전세제도와 임대차 시장의 룰을 만들지 않고서는 앞으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재난이다. 대출금 회수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금융업계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일관성과 임차인 구제방안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는 정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한 계속되는 사회적 재난이다. 

 

시민들의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지 못하고 지옥으로 변해버린 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 특별법을 넘어 임대차 구조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한 정책과 제도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 논의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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