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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처럼 살아나는 국가폭력
김준표(위례시민연대 회원, 손잡는 교회)  |  view : 207

“하나님, 이 개새끼야! 왜 천둥, 번개도 안 쳐 이 개새끼야! 왜 하늘이 맑아 이 새끼야!”


김상근 목사가 생애 가장 큰 충격으로 들은 말입니다. 김상근 목사는 평생 교회개혁과 민주화, 인권, 평화통일 등 기독교 사회운동에 헌신했는데, 수도교회 목사로 일할 때 인혁당 사법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공안 조작 탄압 사건으로, 1974년 중앙정보부가 유신을 반대한 인물들을 ‘국가전복 활동을 지휘하려 했다’고 몰아 이듬해 8명을 사형시킨 사건입니다. 김상근 목사는 살해당한 8명 중 한 분의 장례식에 참여했는데, 그때 희생자의 부인이 부축을 받으며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서 온몸에 힘을 모아 내던진 말이 바로 저 말입니다. 가슴을 찢는 부인의 울부짖음에 김상근 목사님은 견딜 수가 없어서 화장터에 함께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일본제국의 폭력, 군사독재정권의 폭력으로 얼룩진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순사와 헌병이 독립을 열망하는 조선 민족에게 가한 폭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으며 포악했습니다. 광복 후에 민족분단으로 반쪽이 된 남한은 독재정권이 일제의 폭력을 이어갔습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동안 ‘제주4.3’ ‘국민보도연맹’ ‘거제양민학살’ ‘4.19혁명’ 등의 사건 속에서 자국민 학살이라는 끔찍한 국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박정희는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정당하지 못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고 긴급조치와 간첩조작 사건 등으로 수많은 사람의 인권을 짓밟고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처음 언급한 인혁당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전두환은 1980년 5월,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시민을 계엄군의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국가폭력은 정당성 없는 정권 탈취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민을 우습게 보고, 미국을 자신의 뒷배를 봐주는 큰형님으로 모시고, 북한을 자극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보다는 소수의 기득권을 위한 분단유지정책을 도모합니다. 이러한 국가폭력은 다행히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사라져 가는 듯했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보상해주는 절차를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국가폭력의 망령이 ‘국가보안법’과 함께 좀비처럼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자본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민주노총을 간첩단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2월18일) 아침에는 고창건(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박현우(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을 강제집행하고 구속했습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진보단체에 대한 공안탄압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함께했던 이들이 지금 간첩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조사받고 있는 석권호 조직국장은 저와 같은 교단의 잘 아는 교회 교인입니다. 이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간 투옥되었고, 지금도 공안 당국의 뒷조사를 받는 김성윤 목사는 저와 함께 거리에서 기도회를 진행하는 촛불교회 동역자입니다. 평화, 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조헌정 목사(향린교회 은퇴)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전화와 미행을 받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언젠가 이들과 엮여 저 또한 간첩단의 일원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 정권을 쥐고 흔드는 이들과 공안 조작 세력들은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를 명분으로 국가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국가안보와 사회질서는 실은 권력 안보요, 권력질서입니다. 국민을 겁박하는 국가폭력 앞에서 인권, 노동쟁의, 환경운동, 시민운동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공정한 재판도 없습니다. 살겠다는 민중에게 폭력을, 억울해 가슴을 치는 이들에게도 폭력을, 거짓과 불의에 항거하는 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정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국가폭력이 되살아나고, 그 폭력이 일상이 되며, 의로운 사람들이 옥에 갇히고 죽임당하는 사회가 지옥입니다. 이런 지옥에서는 하나님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개새끼’가 되는 사회를 다시 만들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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