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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싸우려는 대통령
송기호(변호사)  |  view : 249

존경하는 사람과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일은 감사하다. 새해에 진주 문화방송의 <어른 김장하> 영상을 보았다. 돈은 똥과 같아서 한 곳에만 모아 놓으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고루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그의 철학에 피부로 공감했다. 어린 시절, 선친께선 똥장군의 무게를 무릅쓰고, 조금이라도 밭에 더 고루고루 똥을 뿌리기 위해 무진 애쓰셨다.

 

한 시대의 어른을 직접 뵙는 일은 더욱 감사하다. 한국 포도 농사의 선구자 김성순님께서 새해 좋은 글을 보내 주셨다. 그는 ‘한 농민의 고백’이라는 글에서, 그가 대구사범학교 3학년에 맞은 8·15 해방을 이렇게 썼다. “백지 상태에서 갑자기 맞은 해방,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갑자기 대낮 거리 한복판에 세워진 것과 다름없었다.” 1949년에 김구 선생이 흉탄에 쓰러진 후, 청년 김성순은 분단 반대 전단을 돌렸다고 감옥에 갇힌다. 1951년에 구사일생으로 옥에서 나와 공군과 육군에서 7년간 군 복무를 한다. 그리고 1960년 김천에 ‘캠벨’ 포도 묘목 400주를 심는다. 그리고 평생 농업과 생명 운동에 헌신하였다.

 

나는 두 어른의 삶에서 대한민국 역사의 힘을 본다. 그들은 우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1919년, 우리 민족은 3·1 독립운동을 이어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반포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민주공화제 정체성을 성취하였다.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 계급이 없이 평등함을 선언하였다.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통신,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확인하였다. 차별없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세웠다. 이미 1919년에, 일본 식민주의자들과 천황주의자들보다 더 문명사적으로 진보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 김장하들과 김성순들은 이러한 정신사적 품 안에서 탄생했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2018년에 내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은 역사적 사건이다. 1919년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제를 제대로 실현하려는 역사의 산물이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불법적인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하여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선언하였다.

 

전 일본변호사회 회장 우쓰노미야 변호사도 2019년에 발표한 ‘일제강제동원문제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 간 협정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본 정부의 해석이고 최고재판소의 판결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피해자가 대법원 판결을 집행하려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고 한다. 만일 정부의 계획대로 이번 피해자 대법원 판결 집행이 좌절된다면, 앞으로 일본은 이를 철저히 관례로 이용할 것이다. 아직 일본기업을 상대로 소송조차 하지 못한 수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있다. 이들의 권리를 한국 정부가 앞장서 막는다면 역사와 싸우는 것이다.

 

일본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일청구권협정을 한국법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한국 안에서 한국 법원을 지배하는 한국 국내법 질서로 만들어 한국 속에 내면화하려고 시도한다.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집행을 막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일본의 전략에 동조하는 것이다. 역사와의 싸움이다.

 

왜 한국 정부의 노력에도 진전이 없는가? 강제동원이라는 본질을 일본이 끝내 부인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사용한 강제동원이라는 표현 자체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불가역적인’ 위안부피해자 해결 합의라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은 위안부 피해의 강제성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은 2019년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여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억누르려고 시도했다.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나는 2가지 해결 방법을 제안하였다. 첫째 대법원 판결의 신속한 집행이다. 강제동원 가해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그 어떠한 대법원 판결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집행이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 정부의 주도적 조치이다. 소송조차 하지 못하고 마냥 나이 들고 세상을 떠나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어떠한 피해 배상도 받지 못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눈물을 정부가 닦아 주어야 한다. 참으로 오랜 시절, 이들의 희생을 외면한 도의적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 국가가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피해자의 청구권을 정부가 양도받아서 일본과 사죄와 배상을 포함한 포괄적 해결을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이땅의 김장하들과 김성순들과 함께 사는 길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23.02.01.) 기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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