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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수 있을까?
김준표(손잡는 교회)  |  view : 238

세모(歲暮), 한해의 마지막인 요즘을 일컬어서 사용하는 한자어입니다. 어른들은 알겠지만, 젊은이에게는 낯선 단어인데 섣달그믐께를 말합니다. 섣달그믐? 한자도 어려운데, 우리말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 마지막 달을 말하고, 그믐은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이니, 섣달그믐께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해, 세월, 나이를 뜻하는 한자 세(歲)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歲자는 b (도끼 월)자와 步(걸음 보)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戌자는 도끼 모양의 고대 무기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도끼와 걸음을 함께 그린 歲자가 어떻게 ‘세월’이나 ‘나이’를 뜻하게 된 것일까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에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歲자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글자로 ‘창(戌)을 들고 싸우면서 보낸(步)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네이버 한자 사전)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이 한자가 틀린 말은 아니듯 싶어요. 아니 올 한해만 돌아보아도 세(歲)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시작된 지난 2월 말에 쓰인 한 기사(3월4일, SBS뉴스 마부작침)는 꽤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ACLED 데이터는 전 세계 90개 이상의 국가에서 보고된 모든 정치적 폭력 및 분쟁을 실시간으로 코딩하는 프로젝트인데, 올해 2월 말을 기준으로 두 달 동안 전 세계에서 분쟁으로 죽은 사람이 1만 6,561명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2월 말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치열하게 이어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은 포함되지도 않은 통계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는 저서 <역사의 교훈>에서 역사에 기록된 3,421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268년, 7.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도 “1945년부터 1990년까지 2,340주 동안 지구촌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 3주일뿐”이라고 말합니다. 인류는 분쟁과 전쟁으로 얼룩진 피의 역사를 써 왔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사회 약자들입니다. 권력에 복종을 강요받는 남자들이 전쟁의 총알받이로 끌려가고, 자신을 보호할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나이 드신 부모님, 아내, 어린 딸, 아이들이 빼앗기고, 죽임당하고, 겁탈당합니다. 지금도 이러한 반인륜의 분쟁, 전쟁범죄가 우크라이나, 미얀마, 아프카니스탄, 나이지리아 등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안전하니 굳이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고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땅 한반도는 77년 동안 이념대립으로 남과 북이 갈라져 있고,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72년 전에는 주변 나라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한국전쟁으로 3백만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 그리고 1천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한반도는 세계의 화약고로 언제 전쟁이 다시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는 최악의 분쟁, 갈등 위기 지역입니다. 


지금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력정책 법령 채택과 남한의 한미일 연합군사훈련, 주한미군의 사드배치 공식화로 남북한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심각한 평화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남한의 어느 정부나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고대 로마제국의 베게티우스 말을 빌려 군사력에 의한 평화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강력한 군사력으로 무장하고, 상대방을 무릎 꿇으라 윽박지르고, 힘센 형님 국가들을 옆에 모셔두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1차 세계대전 후에 전쟁이 아닌 평화적 수단을 국제분쟁의 해결수단으로 채택할 것을 약속한 부전조약(1928년)과 2차 세계대전 후에 세계평화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UN)은 인류의 망상이었나요? 스웨덴의 기본외교정책인 중립국과 민주복지국가의 비전을 만들고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평생 애썼던 팔메 수상 같은 정치가를 우리는 만들 수 없는 건가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섣달그믐께, 평화를 꿈꾸는 사람으로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해도 필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평화의 말씀을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새해에는 송파에 평화를 꿈꾸고 일구는 이웃들이 많아지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평화운동이 더욱 힘차게 이어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미가 4장3절, 이사야 2장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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