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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의 시위와 능력주의
안성용 (위례시민연대 공동대표)  |  view : 430

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하루 전 4월 19일 발달장애인과 가족 등 500여 명이 단체로 삭발을 했다. 4년 전인 2018년 대규모 삭발식 이후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생애 주기별 종합 대책’을 발표했지만 지난 4년 동안 가족들의 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또 삭발과 눈물의 호소뿐이었다.  가족들이 간절히 바라는 건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도 자녀들이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발달장애인 지원 체계 마련을 호소하는 것을 들으면 그렇게 절실할 수가 없다. 

 

또 4월 20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약칭 전장연)는 “장애인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 위해”, “21년째 장애인의 기본 권리인 이동권을 보장해달라”, “장애인 탈시설을 위한 예산 확보”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집회 및 시위를 하였다. 그리고 21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재개하였다. 휠체어에서 내려 전철 출입문으로 기어가는 눈물 나는 모습을 우리는 보도를 통해 보았다. 

 

그러나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사고와 질병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 가운데 88.1%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얻었다. 질환으로 인한 장애가 56.1%, 사고가 32.1%였다. 선천적 원인은 5.1%, 출산 시 원인은 1.4%,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는 5.4%였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안녕’이라는 말이 단지 ‘안녕’인 것은 아니다. 장애인 재활 전문병원인 국립재활원의 ‘장애 발생 예방 교육’은 2005년 시작되어 2019년까지 4,089회 열렸다. 좋은 교육이라 수요가 매우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부터 교육 횟수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그러나 장애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4월 19일 발표한 ‘2020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을 보면 2020년 한 해 동안 8만 3000명이 신규장애인 등록을 하였다. 전체 등록장애인 수는 263만 3000명으로 인구대비 5.1%였다. 20명 중 1명이니 높은 비율이다.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을 고려하면 비율은 더 높을 것이다. 또 65세 이상 장애인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고(2010년 37.1%에서 2020년 49.9%) 있다. 이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노년이 될수록 각종 질병과 사고에 더 노출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한편 15개 장애 유형 중 발달장애(지적, 자폐성)인의 수는 큰 증가 추세(2010년 7.0%에서 2020년 9.4%)를 보인다. 많은 경우 의학적 이유를 찾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환경 오염’ ‘먹을거리 오염’ ‘약품 및 화학 물질 사용 증가’ 등이 주요 원인일 것으로 추론된다. 후천적인 장애도 고통이 심하지만 선천적인 장애의 경우는 부모와 가족이 평생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불평등 심화는 많은 문제를 낳는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잠을 자면서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 살고 있다.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율, 교통사고율, 경제문제로 인한 이혼율, 암 발생율, 가족해체로 인한 1인 가구 증가율,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자살율도 세계 최고이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온갖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파산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 뿌리째 뽑히고 있는 농민,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빈민이 경제활동인구의 2/3를 이룬다. 이들은 매일 ‘의학적인 장애인’이 되고 있다. 한편 서초구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같은 세대 대비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가장 학력이 높고, 자산이 많으며, 운동 시간이 많고, 건강을 위한 지출이 많고, 여행 및 자기 계발 시간이 많다.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이번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비문명적’이라고 했다. 
시위자들을 문명과 대립하는 용어인 ‘야만’으로 몰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그런데 동서고금의 역사는 ‘권력을 쥔 이들이’ 스스로 문명이라 자처하며 그에 반대하는 이들을 야만으로 몰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문명’은 소수의 것이다. 지금 시대에는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이 문명이고, 그렇지 않은 다수가 ‘야만’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부 고위 관리가 다수 국민을 ‘개 돼지’라고 부른 것과 같은 뜻으로 이준석은 말한 것이다. 이준석이 혐오를 이용한 ‘갈라치기’ 전략에 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번 대선에서 여성-남성 대결을 만들고 키운 것이 이준석이다. 

 

이준석은 자칭 타칭 능력주의자(能力主義者)이다. 자기 당의 지방선거 후보들을 시험을 봐서 능력으로 뽑는다고 자랑한다. 같은 사전에 능력(能力)은 이렇게 설명된다. “1.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 2. 권리를 누리거나 행사할 수 있는 자격 3. 정신적 기능이나 신체적 기능의 가능성”. 


능력주의자인 그는 장애인들의 피눈물 나는 외침에 대해 “너희는 힘이 없고 자격이 없고 가능성이 없어”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존재가 무엇보다 우선한다.
생물과 무생물 모두 중요하고 서로 필요하다. 생물이 생활 기능을 하는 데는 또 다른 생물과 무생물이 필요하고 소중하다. 말 없는 공기나 물이나 흙도 생물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순환’이다. 모든 존재 이후에 의식 그것도 인간의 의식이 있는 것이다. 

 

유엔의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 있다. 25개 항의 전문과 50조의 조문으로 이루어진 매우 긴 문서이다. 시간 내서 한 번 전체를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이 중 3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전문 2항. “모든 인간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않고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둘째, 제4조 일반 의무. 1. 당사국은 장애를 이유로 한 어떠한 형태의 차별 없이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완전한 실현을 보장하고 촉진하기 위한 의무를 부담한다. 이를 위하여 당사국은 다음의 사항을 약속한다. (가) 이 협약에서 인정된 권리의 이행을 위하여 모든 적절한 입법적, 행정적 및 기타 조치를 채택할 것 (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구성하는 기존의 법률, 규칙, 관습 및 관행을 개정 또는 폐지하기 위하여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다)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고려할 것
셋째, 제5조 평등 및 비차별. 1. 당사국은 모든 인간은 법 앞에서 그리고 법 아래 평등하며, 법이 인정한 동등한 보호 및 동등한 혜택을 차별 없이 받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 2. 당사국은 장애를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모든 이유에 근거한 차별에 대하여 장애인에게 평등하고 효과적인 법적 보호를 보장한다. 3. 당사국은 평등을 증진하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편의 제공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절차를 취한다.

 

문명은 인종주의, 나치즘, 독재, 미국 만세처럼 쓰인다. 
이들 단어와 역사에 모두 문명이 들어있다. 문명과 자본주의라는 말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와 ‘비인간’에 대한 착취가 지구에 ‘불평등’과 ‘기후 위기’를 만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시대에 ‘문명’은 특권계급이 떠벌리는 자기변명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명한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로 지금 세상이 시끄럽다. 지명받은 절대다수가 각종 비리 문제에 휩싸여 있다. 특히 IMF 때, 그리고 론스타가 국부를 미국으로 가져갈 때. 역할을 한 이들 중 일부가 한덕수와 추경호인 것은 심각하다. 윤석열은 인사를 오직 능력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하며 이준석과 같은 ‘능력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이 능력주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보편적인 운동과 야만
미국 중심주의자들로부터 변방과 야만으로 지칭되던 스웨덴은 이미 1997년에 모든 장애인 수용 특수병원 및 요양 시설을 없애고 ‘탈(脫)시설 사회’가 되었다. 우리와 달리 스웨덴 거리에 장애인이 많이 보이는 이유다.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보편적 복지국가임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병원을 가지 못하고 집이나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국정과제로 채택했지만 아직도 시설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 장애인 단체들의 운동은 이동권, 탈시설, 돌봄 지원, 권리예산, 노동권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보편적인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운동이다. 또 약탈적인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전환을 이행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벌이는 투쟁이다. 따라서 쉽게 끝날 수 없는 투쟁이다. 새 권력에 맞서 가장 약한 이들이 ‘야만’으로 불리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연대의 요청이다. 손잡을 이, 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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