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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노동자라 부를 수 없는 노동자의 눈물
안숙현 (위례시민연대 회원)  |  view : 485

어느날 걸려온 전화 “정의당 서울시당 민생센터장님이시죠?” 
이렇게 시작된 전화 통화 너머의 차분한 음성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었다. 

 

정부와 지자체 부처, 공기업의 사보를 만들던 출판기획 회사 
기차 여행의 고마운 읽을거리가 되어주던 KTX매거진을 만든 회사 
업계 1위, 매출액 100억 회사 대표가 하루 아침에 부도를 선언했다. 
밀린 임금을 8월 31일까지 지급하겠다며 약속하던 대표였다. 업계 관행상 임금은 책이 나오고도 4개월 길게는 1년씩 늦어졌으니 설마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0년을 함께 했던 회사였다. 그런 회사가 직원인(아 그들은 직원이 아니라지) 그들에게 부도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가 다른 직원의 입을 빌려 부도를 선언한 것이다. 

 

프리랜서라고 했다. 사보의 글을 쓰는 작가, 사진을 찍는 사진 작가, 영상을 찍던 영상감독, 좋은 사진을 위해 대상을 꾸며주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맛집 소개를 돋보이게 하던 푸드스타일르스트.. 30여개 기관의 사보를 만들던 70여명의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임금 6억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매일 피해액이 커져갔고 피해자 수가 늘어갔다. 저마다 흩어져 일하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피해를 조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70여명이 6억원이 넘는 이 숫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가 없다.

 

노동청을 찾아가고 사보를 수주한 정부기관들을 찾아다녔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니 도와줄 수 없다”
“달리 방법이 없다” 
마지막 끈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정의당 서울시당 민생센터로 전화를 한 것이다. 

 

체당금이라는 것이 있다. 체당금이란 회사의 도산으로 인하여 임금, 휴업수당 및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퇴사한 근로자에게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하여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지급하는 최종 3개월분의 임금 또는 휴업수당, 3년분의 퇴직금을 말한다. 정규직 직원들은 이 체당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 

 

임금체불에 대한 사용자 처벌도 강해져 1억이상 체불한 사용자는 재판으로 가면 거의 실형이 선고된다고 한다. 체불임금 사례가 극심한 건설 하청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공공건설 수주의 경우 하청 사업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임금체불의 심각성에 법과 사회는 조금씩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성을 인정받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출퇴근을 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지시와 관리를 받으며 일을 했다. 불안정한 일거리를 잃어버릴까봐 임금 지급일이 늦어져도 버티며 열심히 일해온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니 법이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회사가 부도가 나도 자산이 있다면 노동자의 임금은 최우선 변제인데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일반채무로 4순위로 떨어진다. 노동자에게도 등급이 있었던 것이라며 그들은 좌절했다. 
하지만 좌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을 바꾸고 이런 업계 관행과 법제도의 미비를 바꾸겠다며 체불임금을 못받더라도 투쟁을 하겠다고 한다. 

 

부도난 회사에 자산이 없어서 그들은 임금을 못받을 가능성이 높다. 수백에서 수천, 그들의 노동의 대가가 물거품이 되었고 회사 대표는 이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모인 그들은 체불임금을 못받더라도 이번에 이런 모순을 바꾸겠다고 한다. 
피해자 모임에서 당당한 프리랜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그날까지 그들을 응원하며 함께 할 것이다.그리고 그들이 노동자로 인정받고 법제도로 권리를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는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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